장비·인력 총동원 밤새 '화마와 사투' 벌였지만 20㏊ 잿더미
산불 초기 동부산대학 수업중단·인근 주민 수백명 한때 대피
소방 "숨어 있는 불씨 제거 등 완전 진화까지 상당한 시간 필요"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오수희 기자 = 부산 해운대 운봉산 산불이 축구장 28개 면적에 달하는 임야 20㏊를 집어삼키고는 18시간 만에 꺼졌다.
이날 불은 밭두렁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화 가능성에 대한 관계 당국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작은 불씨가 건조주의보에다 때마침 불어닥친 강풍을 타고 마치 도깨비불처럼 수십 미터를 날아가는 바람에 삽시간에 온산으로 번졌다.
갑작스러운 산불에 놀란 주민 수백명이 혼비백산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고, 수십 년 소나무 등 수천 그루 나무가 불탔다.
다행히 인명피해 없이 큰불은 진화됐지만, 숨어 있는 불씨를 모두 제거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바람 타고 다니는 '도깨비불'에 속수무책
불은 지난 2일 오후 3시 18분 해운대구 반송동 세림요양원 뒤편 운봉산 2부 능선에서 시작됐다. 불은 이날 낮 초속 3m로 불던 건조한 남서풍을 따라 순식간에 확대됐다.
불씨가 바람에 날리는 '비화' 현상으로 첫 발화지점에서 수백m 떨어진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소방대가 투입되며 초반에는 불길이 줄어드는 듯했지만, 오후 5시 30분께 국지풍이 강하게 불며 화재는 확대됐다. 바람 방향도 바뀌어 불길이 동쪽으로 움직였고 운봉산 능선과 인근 개좌산 능선으로 번지며 행정구역을 넘어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를 향했다.
소방본부는 당시 대응단계를 1단계에서 2단계로 격상해 총력 대응에 나섰다. 대응 2단계는 대형 피해가 우려되는 화재 때 내려진다.
운봉산 산불, 밤새 산 정상 쪽으로 번져 / 연합뉴스 (Yonhapnews)
하지만 오후 6시 50분 일몰 시각을 넘기며 헬기마저 뜨지 못하는 바람에 진화작업은 더디게 진행됐다.
그나마 밤에는 바람이 잦아들며 번지는 속도가 낮보다 느렸다. 소방대원과 관할 지자체 공무원은 민가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고자 총력전을 벌였고, 화재 전문가 등으로 꾸려진 선발대는 야간에도 지상 진화 작전을 벌였다.
진화작업은 3일 새벽 동이 트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소방과 산림청, 시, 관할구청이 가용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했고, 오전 9시 10분 기준 큰불을 잡았다.
불이 난지 18시간 만이다.
◇ 헬기 18대, 공무원 3천338명 '화마와 사투'
운봉산 화재에는 헬기만 무려 18대가 투입됐다. 동원인력만 3천338명에 이른다. 이들을 돕기 위한 적십자 등 봉사단체도 나서 밥차를 운영하는 등 힘을 보탰다.
야간에는 화마와의 사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선발대에는 산림화재에 전문성이 있는 남부지방산림청 소속 타격대 80여명과 소방대원이 투입됐다.
이들 중 일부는 바의 방향을 예측해 화재보다 앞서가며 낙엽 등 가연 물질을 치우는 등 방화선을 구축했다. 또 일부는 바람을 등지고 화재를 뒤따라 가며 불이 남기고 간 잔불을 물지게로 끄고, 갈고리로 긁어 진화했다.
소방대 한 관계자는 "5명이 한조로 구성돼 깜깜한 산길을 랜턴에 의지해 더듬어 올라가며 잔불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선발대를 따라서는 지자체 공무원으로 구성된 후발대가 잔화 정리 작업을 진행했다.
동이 튼 뒤에는 다시 헬기가 진화에 나섰고, 공무원들은 '인해전술'로 사방에서 화재 지역의 포위망을 형성하며 작업을 전개했다.
초진은 됐지만 숨어 있는 불씨를 완전히 제거하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소방본부 한 관계자는 "헬기로 작업 할 수 없는 부분이고 사람이 산을 오르며 낙엽을 들추어 보고 하나하나 확인하는 작업"이라면서 "숨어 있던 불씨가 건조한 날씨 탓에 또 산불로 이어질 수 있어 꼼꼼하게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대피 수백명…인명피해는 없어
2일 산불 발생 초기에 인근 요양병원 입원환자 48명과, 주민·대학생 등 200여 명이 긴급 대피하기도 했다. 동부산대학교는 즉각 수업을 중단하고 학생들을 대피하도록 했다.
소방 당국은 화재 현장 근처 아파트 3개 동 180가구 주민에게 대피를 권유하기도 했다.
기장군 사등마을 주민 30여명도 2일 오후 9시 불길이 가까워지자 실로암 공원묘지 사무실로 대피, 밤을 지새웠다. 이들은 3일 오전 5시 위험이 해소되며 마을로 복귀했다.
장애인 거주시설인 인덕원 소속 장애인 20명과 직원 10명도 대피권고에 따라 인근 운봉중학교 건물에서 밤을 보냈다.
화재 현장 주변 기장군 실로암 공원묘지에 가족을 안장한 주민들도 밤새 화재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까 우려했다.
인근 주민들도 화재로 인한 냄새 피해와 불안감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 임야 20ha 잿더미…집계 혼선도
이틀간의 화재로 임야 20ha가 잿더미로 변했다.
화재 소실면적을 두고 관계기관의 집계가 달라 주민에게 혼선과 불안을 부추기기도 했다.
3일 새벽 부산소방본부는 피해면적을 10ha로 집계했다가 13ha로 다시 추산했다.
경찰은 30ha, 부산시는 40ha로 추산해 큰 차이를 보였다.
전날 피해 집계 때도 소방은 5ha로 발표했고 부산시는 10ha로 발표했다가 3ha로 수정한 바 있다.
이들 기관은 3일 오전 8시 기준으로 협의를 거쳐 피해면적을 20ha로 통일했다.
박염 금정소방서장은 "불씨가 비산하다 보니 비산한 산의 전체 구역 면적을 소실면적으로 계산한 기관도 있고, 비산 부위만 집계한 기관도 있어 수치가 달랐다"고 해명했다.
◇ 산불 원인 '실화' 가능성 수사
화재는 원인은 아직 오리무중이지만 실화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첫 불이 난 곳은 밭두렁으로 지목됐다.
최초 불이 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림화재 수사를 맡게 된 해운대구 특별사법경찰은 누군가가 실수로 불을 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폐쇄회로(CC) TV 등을 확보, 조사 중이다.
이날 오후 2시에는 경찰, 소방, 특사경의 합동 감식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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