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 20대만 되어도 고령 취급을 받는 모델계에서 은회색 모발과 깊이 팬 주름을 당당히 드러내며 런웨이를 활보하는 65세의 '꽃할배'. 18년간 갈고 닦은 무용 실력에서 우러나온 춤 솜씨로 전국노래자랑 무대를 평정한 77세 '할담비'. 80만 구독자를 등에 업고 상업 광고계까지 진출한 73세 '뷰티 유튜버'.
'해가 지고 어스름해질 때'라는 뜻의 '황혼(黃昏)'기에 새로운 삶에 도전하면서 한창때보다 더 반짝이는 삶을 사는 이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2018년, 2019년 연달아 서울패션위크 런웨이를 장식한 모델 김칠두(65)씨는 국내 1호 시니어 모델로 꼽힌다. 미에 대한 기준이 폭넓어지면서 젊은층이 점령해온 패션 모델계에도 은발을 휘날리는 시니어 모델이 활약하는 시대가 찾아왔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김씨다.
분홍색 선글라스와 야전 상의, 비스듬히 쓴 스냅백과 가죽 라이더 재킷. 20대 톱 모델도 쉽사리 소화하기 힘든 의상이나 컨셉도 그가 착용하면 거칠 것이 없다. 오히려 세월의 흔적이 녹아든 깊은 주름과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은회색 머리카락과 수염 덕에 젊은 모델이 절대 가질 수 없는 독특한 아우라까지 풍긴다.
어색하지 않은 포즈와 철철 넘치는 모델 '포스'만 보면 수십 년 세월을 모델로 살아온 사람 같지만 모델 경력은 고작 1년 남짓.
20대에 의류 도매상도 했고 패션모델의 꿈을 안고 모델 경연대회에서 입선한 경력도 있지만 지금처럼 연예계 진출이 성공과 직결되지 않았던 시대에 꿈만 좇으며 청춘을 보내기엔 한계가 있었다. 식당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고 마지막으로 20여년 간 운영한 순댓국집은 분점을 낼 만큼 잘 되었다. 하지만 유명인을 광고 모델로 내세운 체인 순댓국 식당이 많아지면서 식당 운영도 녹록지 않아졌다.
어느덧 고령으로 접어들고 있던 차에 아예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라고 제안한 것은 1남 1녀 중 막내인 딸 린씨. 아버지가 젊었을 때 모델에 뜻이 있었다는 사실을 안 딸이 시니어 모델을 모집하는 학원에 등록하라고 권유했고 그것이 김씨가 '모델 김칠두'로서 새로운 삶을 사는 첫걸음이 됐다.
"모델로 살면서 가장 좋은 것은 내가 평생 경험해 보지 못했을 스타일과 헤어를 다양하게 해본다는 것이에요.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취했을 때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나오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본인이 생각하는 인기의 비결은 "한국에 없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는 김씨는 삶의 변화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것을 배우고 행동하는 데 너무 고민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때론 실수하더라도 실망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 실수는 나의 자산이 될 것이며 그것이 지금의 모델 김칠두를 탄생시켰기 때문입니다"라고 조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모델 김칠두씨만큼이나 요즘 느지막이 찾아온 인생 역전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꽃할배'가 또 있다. 바로 지난달 24일 방송된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가수 손담비의 '미쳤어'를 선보여 SNS를 열광의 도가니에 빠트린 지병수 할아버지(77ㆍ사회복지관 자원봉사)가 그 주인공.
결혼하지 않고 기초수급생활자로 살아온 것으로 알려진 지씨는 카라, 티아라, 채연 등 다른 70대들은 잘 듣지 않는 가수들의 노래가 애창곡이라고 말한다. '허니', '인디안 인형처럼' 등의 빠른 템포의 곡들을 특유의 창법과 리듬감 넘치는 춤사위로 표현해 젊은 층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그의 노래와 춤이 끼가 넘치고 유쾌해서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아 인생을 즐기며 살아온 지씨의 삶의 방식에 대중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가 방송 출연 이후 지난달 28일 개설한 유튜브 채널 '할담비 지병수 - Korean Grandpa's crazy k-pop'은 3일 현재 구독자 수 9천500명을 기록했다. 댓글은 지씨의 앞날을 응원한다는 팬심 가득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혹여 유튜브 개설로 대중 앞에 본격적으로 나선 할아버지가 정당한 수익 배분을 받지 못하거나 원래 받던 사회보장 급여까지 받지 못하게 될까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지 할아버지 유튜브 채널에 덕*이라는 아이디로 댓글을 단 이는 "공부가 안될 정도로 할아버지의 영상을 다 찾아봤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응원했고, 누리꾼 두리**은 '코리아 그랜마'라는 애칭의 인기 유튜버 박막례(73)씨와 할아버지가 한 자리에서 만나는 것을 봤으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csm@yna.co.kr
기사 제보나 문의는 카카오톡 okjebo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