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 '패왕별희' 하이라이트 시연…5일 개막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3일 오후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국악계 아이돌로 불리는 소리꾼 김준수가 흰 얼굴에 붉은 눈 화장을 한 채 무대 위에 등장했다.
검붉은 의상에 화려한 금박 장식 의상을 입은 그는 한눈에 보기에도 경극 배우처럼 보였다.
몸을 꼿꼿히 세운 채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기도,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는 손끝을 파르르 떠는 등 경극의 정형적이고 상징적인 움직임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만큼은 절절한 판소리 자락이 이어졌다.
쓰러진 김준수를 품에 안은 소리꾼 정보권 역시 절절한 오열을 판소리에 담아 토해냈다.
경극의 화려하고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창극의 내면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소리와 만나 낯선 매혹을 객석에 전했다.
이날 무대는 국립창극단의 신작 '패왕별희' 하이라이트 장면을 공개하는 자리였다.
국립창극단은 오는 5~14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초패왕 '항우'와 '우희'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경극 '패왕별희'를 창극으로 담아내는 실험을 한다.
평생을 경극의 현대화·세계화 작업에 헌신해온 대만 당대전기극장 대표 우싱궈가 연출을 맡고, 다재다능한 소리꾼 이자람이 작창과 음악감독을 맡았다. 전통예술의 현대화 작업을 꾸준히 시도해온 공통점을 지닌 두 사람의 만남으로 더 주목받은 작품이다.
우싱궈는 이날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항우의 용맹함과 따뜻함을 판소리에 담아내는 작업을 한 것을 행운으로 느낀다"며 "전통예술 장르 저마다의 표현 방식이 있겠지만 판소리의 내적 생명력과 우주를 향한 외침에 진심으로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자람은 "경극이란 중국 전통과 만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소리에 있어서도 전통적 음색을 잘 살리려 했다"며 "판소리 다섯 바탕을 참고해 음악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항우와 우희의 이별 직전 함께 부른 노래는 '춘향가'의 '사랑가'를 참고한 것이다.
물론 이번 작품이 모든 경극의 공식과 상징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국립창극단 배우들의 경극적 몸짓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장면도 있다.
우싱궈는 "완벽한 경극이 아닌 경극적 요소를 차용한 작품"이라며 "경극의 색채와 분위기, 동선 등을 보여드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경극의 정형화된 약속을 미리 공부하고 관람하면 재미가 배가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숫자 '4'는 경극에서 '많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군사 네 명의 전투는 큰 전투를 상징한다. 이 때문에 장군 등 뒤에 꽂힌 깃발로 수천, 수만의 군을 표현할 수도 있다. 장군 머리를 장식하는 깃털 길이는 지위의 고저와 비례한다.
경극과 창극의 만남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패장이었으나 역사 속에서 영웅으로 남은 항우의 매력도 살필 수 있다.
우싱궈는 "모든 패자는 역사 속에서 오염되기 마련이지만, 항우는 유일하게 패장이란 낙인을 피해간다"며 "그의 강직함과 정직함, 동시에 가슴에 품은 사랑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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