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WP 소식통 인용 보도…미국 최초 흑인 추기경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성 학대 사건 은폐 의혹에 연루돼 사퇴한 도널드 우얼(78) 미국 워싱턴 대주교의 후임으로 아프리카계 흑인 윌턴 그레고리(71) 애틀랜타 대주교가 임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그레고리 대주교가 워싱턴 대주교직을 맡아달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요청을 수락했다고 2명의 관련 소식통을 인용해 3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바티칸 교황청은 4일 신임 워싱턴 대주교 임명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소식통 가운데 한명은 전했다.
워싱턴 대주교직은 전임인 우얼 대주교가 펜실베이니아 주교로 있던 1988∼2006년 교구에서 벌어진 성 학대 사건을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거센 비판이 일면서 작년 10월 사퇴한 이후 약 6개월간 공석이었다.
워싱턴 대교구는 139개 교구에 신자 65만5천여명으로 규모가 크진 않지만, 미국에서 가장 저명한 대교구로 평가받는다.
교황청이 그레고리 대주교를 공식 임명할 경우 그는 워싱턴 최초의 아프리카계 흑인 대주교가 된다.
전통적으로 워싱턴 대주교가 교황 선출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으로 서임되는 점에 비춰 최초의 미국 흑인 추기경이 될 가능성도 높다.
시카고에서 나고 자란 그레고리 대주교는 120만명의 신자를 보유한 미국 남부 애틀랜타 대교구를 14년간 이끈, 미국의 대표적인 개혁 성향 성직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특히 미국 가톨릭계가 아동 성 추문에 휩싸여 대중적 신뢰 위기에 봉착했을 때 성직자들이 저지른 범죄 행위를 강도 높게 비판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사법당국이 1940년대부터 70년에 걸쳐 가톨릭 사제 301명이 1천명이 넘는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한 데 이어 그 여파로 우얼 대주교가 사퇴하자 "가톨릭교회에 '수치의 구름'이 드리우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가톨릭계 행태에) 화가 나 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면서 "우리 교회가 또다시 '범죄적 일탈 행위의 피난처'로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레고리 대주교는 2001∼2004년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의장으로 재직하면서 아동 성 학대 방지를 위한 새로운 헌장 제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성직자들의 성범죄 문제와 관련해 미국 가톨릭계 최초로 작성된 이 헌장은 이후 관련 범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뼈대로 하는 가이드라인 수립의 토대가 됐다.
그레고리 대주교는 가톨릭계가 받아들이기 꺼리는 성적소수자(LGBT)들에 비교적 관대한 성직자로도 알려져 있다.
교회가 LGBT에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국 예수회 교인을 연사로 초청하는가 하면 LGBT를 옹호하는 성 학대 피해자와 상담한 성직자를 퇴출하라는 주장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그는 다만, 2014년 애틀랜타 대교구가 자선기금 220만 달러(약 25억원)로 그가 거주할 저택을 지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론에 직면하는 등의 오점을 남긴 바도 있다고 WP는 전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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