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피·폭발·사망…산불로 희망 사라진 '악몽 같은 밤'

입력 2019-04-05 00:45   수정 2019-04-05 02:02

[르포] 대피·폭발·사망…산불로 희망 사라진 '악몽 같은 밤'
전쟁터·재난영화 보는 듯…피해 규모 확인조차 벅찬 긴급신고 빗발


(고성·속초=연합뉴스) 이종건 이해용 양지웅 박영서 기자 = 불에 타 녹아버린 버스, 속수무책으로 타들어 가는 민가, 하늘을 뒤덮은 연기, 이 모든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번지는 야속한 불길.
지난 4일 강원 고성에서 발생해 속초로 번진 산불현장은 불이 타고 있어도 끌 수 있는 사람이 없고, 끌 수도 없을 정도로 거세다.
도깨비불처럼 날아다니는 불씨를 쫓아 불을 끈다는 건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사이렌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리고, 고성과 속초를 잇는 7번 국도 주변은 완전 '초토화'됐다.
고성 산불 전쟁터 방불케 하는 '불바다'…인명피해 속출 / 연합뉴스 (Yonhapnews)
'대피하라'는 재난문자가 쉴 새 없이 들어온다. 휴대전화조차 연결이 원활화지 않은 지역도 있다.
'끌 수 있다'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빨리 새벽이 오고 해가 뜨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재난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민가나 건물이 불에 타는 모습을 목격한 곳만 수십 곳. 속수무책으로 타들어 가는 민가에는 누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장사동 일대는 연기로 가득해 취재 차량이 들어가기도 겁이 났다.
속초고등학교 기숙사에 불이 붙었다는 얘기가 들려 접근하려 했으나 연기로 바로 앞이 보이지 않아 차를 돌려야 했다.
오후 10시까지는 불이 붙지 않았다고 들었으나 현재는 어떤지 확인조차 할 수 없다.
속초시 교동 아파트단지 인근까지 번진 불길에 주민들은 속속 대피하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불길을 바라보며 가족들과 통화하고 있다.
급한 대로 여행용 가방이나 쇼핑백 등에 짐을 잔뜩 꾸린 시민들은 보금자리를 뒤로하고 대피소를 향하고 있다.
집 안에 남은 일부 주민들은 창밖으로 멍하니 불길을 쳐다보는 모습이다.
인근 도로는 대피 차들로 꽉 막혀 차들이 거북운행을 하고 있다.
고립, 폭발, 대피, 위험, 부상, 사망 등 어딜 가도 부정적인 단어들로 가득하다.

시민들은 "살다 살다 이런 큰불은 처음 본다", "양양 낙산산불은 산불도 아니다", "불바다가 따로 없습니다", "불이 날아다녀요", "손댈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등 반응이다.
임시대피소인 동광중학교는 분위기가 무겁다. 급하게 대피하느라 가지고 온 물건도 많지 않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대피한 노인부터 아직 이름도 짓지 못한 태어난 지 10일 된 아들을 데리고 대피한 부모까지 많은 사람이 모였고, 얼굴에는 걱정이 깊게 깔려 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현장지휘소가 마련된 고성군 토성면사무소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외국 손님을 데리고 숙박하다 손님을 데리고 불길에 쫓겨 나온 가이드, 아파트에까지 불이 번져 확인을 요청하는 시민, 여기저기서 폭발음을 들었다는 시민 등 확인조차 벅찬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유명 관광 시설들이 불에 탔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전국에서 소방차와 인력을 동원한 소방당국도 진화보다는 인명피해 방지에 주력하고 있다.
악몽 같은 밤이 이어지고 있다.

conany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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