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쿠키 등 변종 마약 투약…SK·현대그룹 손자 잇따라 적발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올해 2월 인천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에 첩보 한 건이 들어왔다. "변종 마약을 판매하고 직접 투약하는 '약쟁이'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마수대 형사들은 추적 끝에 같은 달 27일 서울 성북구 한 길가에서 첩보 속의 마약 공급책을 검거했다. 수차례 마약 전과가 있는 이모(27)씨였다.
압수된 이씨의 휴대전화 텔레그램 메신저에는 '대마를 구해 달라. 계좌로 돈을 보내라'는 내용의 마약 거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경찰은 이런 메시지를 주고받은 남성 2명이 "누구냐"고 이씨를 추궁했다. 이씨 휴대전화에서 'YG'와 '정 회장님'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인물들이었다.
이씨는 최초 조사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라며 딱 잡아뗐다. 그러나 두 번째 조사 때 더는 버티지 못하고 이들의 실체를 실토했다.
담당 형사는 깜짝 놀랐다. 휴대전화 속 'YG'는 SK그룹 창업주 고 최종건 회장의 손자 최모(31)씨였고, '정 회장님'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 정모(28)씨였다.
경찰은 추가로 확인 작업을 거쳐 이씨의 진술이 사실이라고 판단하고 최씨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뒤를 쫓았다.
최씨는 이달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SK그룹 계열사인 SK D&D 사무실에서 체포됐다.최씨는 개발 및 디자인 전문인 이 회사에서 매니저로 근무하며 경영수업을 받고 있었다. 이씨가 입을 연 지 한 달 만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회사 건물이 커 체포영장을 집행하러 갔을 때 최씨를 찾을 수 없었다"며 "회사 관계자에게 이야기하니 법무팀 관계자가 나왔고 어디론가 연락하더니 최씨가 사무실로 와서 곧바로 체포했다"고 말했다.
분당 회사에서 인천경찰청 마약수사대 사무실로 압송된 최씨는 흰색 마스크를 쓴 채 고개를 숙이고 조사실로 들어갔다.
"혐의를 인정하느냐. 마약을 어디서 구매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상녹화 조사실에 들어간 뒤부터는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순순히 범행 사실을 털어놓았다.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최씨는 "반성하는 차원에서 법원 결정을 겸허히 따르겠다"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경찰서 유치장에서도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다며 가족들 면회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6일 "조사를 받는 동안 최씨가 '담배를 달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어떤 요구 없이 '잘못했다'는 말을 하면서 상당히 겸손하게 조사를 받아 다소 의외였다"고 말했다.
최씨는 지난해 3∼5월 평소 알고 지낸 이씨로부터 변종 마약인 대마 쿠키와 액상 대마 카트리지를 15차례 사서 피운 것으로 조사됐다.
그가 이씨에게 구매한 대마는 모두 45g으로 대부분 대마 쿠키였다.
이 대마 쿠키는 2000년대 중반 유학생들과 외국인 강사 등이 해외에서 몰래 들여와 투약하며 유행하기 시작한 변종 마약이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최씨에게 마약 공급책 이씨를 소개한 인물은 현대가 3세 정씨였다. 정씨와 이씨는 미국 유학 중 알게 됐고 귀국 후에도 연락하며 지냈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정씨 이름을 실토한 뒤 "정 회장님에게는 주로 액상 대마 카트리지를 구해다 줬다"며 "정 회장님 자택에서 한 차례 함께 대마를 피웠다"고 털어놓았다.
이씨 휴대전화 속에서 정씨는 '정 회장님'으로 불렸으나 실제로는 현대그룹 한 계열사에서 상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는 마약 공급책 이씨가 경찰에 체포되기 1주일 전인 올해 2월 해외로 출국했고 한 달 넘게 귀국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최근 정씨 자택과 회사에 출석 요구서를 보냈으며 장기간 자진 귀국을 하지 않으면 인터폴을 통해 적색 수배를 내릴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정씨의 회사 등 기반이 모두 국내에 있다"며 "조사를 피하기 위해 장기간 귀국을 미루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씨로부터 비트코인을 받고 변종 마약을 판매한 용의자도 쫓고 있다.
또 최씨를 다음 주께 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는 한편 정씨가 귀국하는 대로 정확한 혐의를 조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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