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 2명 등 성직자 25명, 핵무기 장착 잠수함 배치 50주년 행사 반대
(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영국 해군이 핵무기 장착 잠수함 배치 50주년을 기념해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에서 열려던 행사가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2명의 주교를 포함한 성직자 25명이 핵무기를 기리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며 웨스트민스터 사원 행사의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왕실의 주 교회로 왕실 일원의 결혼식이 열리거나 유명인사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이들 성직자는 행사에 반발, 사원의 주임 사제에게 보내는 연판장을 만들어 행사의 취소를 요구했다.
이 행사는 다음 달 3일 개빈 윌리엄슨 장관 등 국방 관련 고위 관계자를 포함해 초청 대상자만 참석해 열릴 예정이다.
사원 측은 홈페이지에서 해군 주최의 이 행사가 전쟁 억지력을 통한 해군의 지난 50년에 걸친 효과적인 평화 유지 공로를 인정하려는 것이라며 전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성직자들은 이 사원 내에서 핵무기를 기념하는 행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콜체스터 교구의 로저 모리스 주교는 "무고한 시민 수천 명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말살하도록 만들어진 장치를 기념하는 것은 예수의 복음, 교회가 다짐하는 평화 및 인도주의의 고양과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첼름스퍼드 교구의 스티븐 코트렐 주교도 지난해 7월의 교회 총회에서는 무차별성과 파괴력 때문에 핵무기는 교인들에게 끝없는 제거 노력이 요구되는 무기 범주로 제시됐다고 말했다.
코트렐 주교는 또 "해군과 이들 잠수함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기리겠다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좋은 의도를 의심하지는 않지만, 이 행사는 또한 무기 그 자체를 기리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영국 해군은 1969년 4월 이후 '가차 없는 작전'(operation relentless)의 일환으로 핵미사일들을 실은 잠수함 한 척을 항상 해상에 배치하고 있다. 이들 핵미사일은 명령을 받는 즉시 발사하도록 준비돼 있다.
반핵단체인 '핵무기 폐기 캠페인'(CND) 측도 영국의 핵무기 시스템에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한 행사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못마땅한 일이라고 밝혔다.
반발이 거세자 웨스트민스터 사원 측은 이번 행사는 전쟁 억지력을 유지하려는 해군의 공로를 인정하는 것이며, 핵무기에 대한 감사 혹은 기념 의식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영국 성공회 측은 최고위 성직자인 캔터베리 대주교나 군 파견 주교가 이 행사에 참석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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