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기획위원회 '제조업 르네상스 TF' 단장 조원희 교수 인터뷰
"강소기업 육성, 숙련공 우대하고 산업구조 고도화해야"
(서울=연합뉴스) 특별취재팀 임미나 기자 = "미중 간 패권전쟁이 우리에게는 시간을 벌어줬습니다. 중국의 성장이 주춤한 지금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우리 경제의 기둥인 제조업을 살려야 합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제조업 르네상스 태스크포스(TF)' 단장인 조원희(63)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는 6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10월 구성돼 이달 말까지 운영 예정인 '제조업 르네상스 TF'는 그동안 조사·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최근 1차 보고서를 냈으며 현재 2차 보고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조 교수는 TF 1차 보고서에 담긴 제조업 르네상스 정책 제안으로 범부처 차원의 산업정책 수립, 인적 역량 극대화를 통한 산업구조 고도화, 강소기업 육성, 지역별 정책 거버넌스 구축 등에 관해 설명했다.
◇ "향후 5년간이 한국 제조업의 부흥 기회"
조 교수는 "글로벌 경기가 2008년 금융위기를 지나고서 서서히 반등하다가 10년이 지나면서 수축 국면을 맞게 됐다"며 "이에 따라 한국은 수출이 감소하면서 제조업 가동률 저하가 불가피해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중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은 우리 경제성장의 큰 기회 요인이었는데 점점 많은 부분에서 중국이 우리를 추격하거나 능가했고 이로 인해 특히 조선과 자동차 두 축이 위기에 빠지게 됐다"고 한국 제조업 위기의 배경을 정리했다.
이어 "다만 다행인 것은 중국이 야심 찬 산업육성책인 '제조 2025'를 발표한 뒤 큰 위협을 느낀 미국 등의 견제가 시작됐다는 것"이라며 "미중 간 패권전쟁이 우리에게는 시간을 벌어줬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이 고도성장의 취약점으로 '3대 회색 코뿔소'(발생 가능성이 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리스크)라 일컬어지는 그림자 금융(기업부채), 부동산 버블, 과잉 설비 등 문제를 안게 됐다"며 "여기에 미국의 견제까지 더해지면서 중국은 당분간 내부 구조조정과 거시경제의 안정화에 골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상당 기간 공격적으로 투자를 확장할 수 없어 제조업 성장이 주춤할 수밖에 없는데, 한국으로선 이 기간을 제조업 기반을 튼튼히 다져 '제조 강국'으로 올라설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향후 5년 안팎의 기간에 어떻게 하느냐에 우리 제조업의 명운과 한국경제의 질적 성장 여부가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 "과거 국가주도 방식 아닌 민주적 정책 필요"
조 교수는 제조 강국인 선진국들이 모두 최근 10여년간 국가 차원의 산업정책을 수립해 제조업을 육성해온 반면 한국은 이를 방기했다며 큰 틀의 산업정책 안에서 제조업 진흥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조업의 중요성은 세계적으로 모두가 깨닫고 있어요.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강국들이 중국에 제조업을 많이 뺏기고 이것이 경제에 위협 요인이 되는 걸 경험하면서 '이게 중요하구나, 버리면 안 되겠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됐죠. 제조업이 있어야 신기술도 개발하고 4차 산업혁명도 꾀할 수 있지, 제조업이 공동화되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일하게 오바마 전 정부 정책 가운데 뒤집지 않은 것이 바로 '제조업 르네상스' 정책이에요. 그렇다면 한국은 어땠나 생각해 봐야겠죠."
그는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의 산업정책이 국가주도의 하향식(top-down)이었는데 독재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이후 이런 대규모 산업정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팽배했다"며 "2000년대 이후 종합적인 산업육성책이 사라졌고 20년 동안 이렇다 할 정책이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본격적인 제조업 르네상스 정책은 좁은 의미의 산업진흥책이 아니라 범부처 차원에서 넓게 추진해야 한다"며 "과거 박정희식으로 하자는 게 아니라 민주적인 산업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조업은 특히 일자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중요하다"며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존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게 아니란 것은 국민들도 알고 있지만 5∼10년에 걸쳐 중장기 산업전략을 제시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것부터 옮기면 국민들도 어느 정도 안심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인적 역량 극대화로 산업 고도화, 강소기업 육성해야"
조 교수는 우리 제조업의 생산성과 기술 수준, 산업구조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고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그동안 남들이 하는 것은 이미 다 따라 했고 웬만한 수준으로 구현했지요. 이제는 새로운 선도전략이 필요합니다. 한국 차와 독일 차가 수준이 다르잖아요. 기술을 개발하고 산업구조를 고도화해 밸류 체인(가치사슬)의 높은 곳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쪽으로 진입해야 합니다."
그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스위스의 정밀기계, 하나에 몇천만원씩 하는 덴마크의 음향기기 같은 제품처럼 남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장(長)주기의 전략적 산업을 육성하고 숙련된 기술, 축적된 지식을 갖춘 강소기업을 키워야 한다"며 "그러려면 인적 역량을 극대화하고 역량 있는 인력이 중소·중견기업에 가게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젊은 인재들이 그런 생산 현장으로 가게 하려면 스마트공장 이전에 '스마트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며 "근무 환경을 쾌적하게 하고 문화 인프라, 좋은 주거환경도 갖춰 일하고 싶은 장소를 만들고 그 이후에 공장의 디지털화, 지능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또 "연구자나 현장 엔지니어, 숙련공을 우대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한국은 연공서열의 임금체계로 인해 직장을 옮겨도 경력 인정이 안 되는데, 이런 임금체계를 바꾸고 숙련도와 경력에 대한 보상체계를 마련해 숙련공들이 강소기업에 모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민주적·수평적인 산업정책 수립 방안으로 '제조업 르네상스 지역별 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그는 "지역별로 생산자 노조와 기업가, 전문가협회, 지역사회, 지역밀착 금융기관 등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정책을 논의하는 수평적인 플랫폼,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며 "자발성에 기초한 위원회를 만들어 지역에 필요한 정책을 논의하고 그 지역의 인적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위원회에 대기업이 들어오게 해 협력업체들이 강소기업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역할을 맡겨야 한다"며 "대기업의 퇴직자나 경력자들이 그 실무를 맡을 수 있다. 대기업 입장에서도 협력업체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을 공급받으면 이익이 되므로 상생의 관점에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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