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환 작가 11년 만의 장편소설…탈주병 김진수 이야기 다뤄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한국 국적을 가진 미 현역 군인이 베트남에 파병됐다가 휴가지인 일본에서 쿠바 대사관으로 숨어버린 뒤 8개월 만에 잠적한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초유의 사태에 한국과 미국, 일본 정부가 모두 그를 찾는 가운데 그는 모두가 짐작한 북한이 아닌 소련을 거쳐 스웨덴으로 향한다.
올해로 등단 39년째를 맞이한 이대환 작가가 11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총구에 핀 꽃'(아시아)을 들고 돌아왔다.
이번 소설은 한국계 미군으로, 1967년 주일쿠바대사관에 망명한 탈주병 김진수 삶의 궤적을 모델로 삼아 '손진호'라는 인물을 탄생시켰다.
김진수를 모델로 삼지만, 김진수와 손진호 사이에는 뚜렷한 격차가 존재한다.
작가는 자신만의 고유한 사유와 상상력으로 새로운 서사를 조형해내고자 심혈을 기울인 끝에 분명한 성과를 냈다.
이 작가는 "'손진호'는 '김진수'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손진호'"라면서도 "단지 김진수의 고독과 고통도 고스란히 짊어지고 나아간 작은 인간이 손진호다"고 밝혔다.
소설은 2018년 73세인 손진호의 아들인 '나'라는 화자를 통해 손진호의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을 더듬는다.
손진호는 한국전쟁의 고아로 미국에 입양돼 히피 문화를 체화한 후 미군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한다.
일본으로 휴가를 나온 그는 주일쿠바대사관에 잠입하지만 망명길이 막힌다.
망명에 실패하고 유폐의 인간으로 일 년을 견딘 뒤 다시 지구를 도는 험난한 길을 선택한 손진호에게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
"국가나 거대 폭력이 평화를 파괴할 수 있지만, 작은 인간의 영혼에 평화가 살고 있다면 평화는 패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한국 현대사와 세계사에 대한 거대 서사를 펼쳐 보이는 이번 소설에서 진정한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근대 국민국가를 넘어선 세계 평화의 희구, 이를 실천하기 위한 거점으로서의 '작은 인간, 개인'에 대한 강조가 핵심 사상이다.
손진호의 여정이 보여준 평화와 개인의 의미는 새의 이미지를 통해 강조돼 그의 어린 시절을 지나 2018년 남북 정상이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만났을 때 들려오던 새 소리까지 이어진다.
이경재 문학평론가는 "'작은 인간'의 영혼에 남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지구를 거의 한 바퀴 돌아야 했던 손진호의 외롭지만 의로운 여행을 통해 진정한 세계 평화의 길을 모색한 우리 시대의 문제작"이라고 이번 소설을 평했다.
김진수 이야기를 작가에게 들려준 일본 지식인 오다 마코토는 이번 소설에서 '선생님'으로, 미망인은 '강 여사'로 등장한다.
오다 마코토는 한국 유신독재 시절 사형 선고를 받은 시인 김지하를 구원하려는 지식인 국제 연대를 조직한 작가로, 베트남전쟁 기간에는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을 이끌었다.
이대환 작가와 이경재 문학평론가는 5월초 '총구에 핀 꽃'을 일본 고베 인근 효고현에 있는 오다 마코토 문학비에 헌정하러 갈 예정이다.
한편 '총구에 핀 꽃'은 '아시아 문학선' 시리즈 첫 한국 장편소설이다.
베트남 작가 바오 닌 장편소설 '전쟁의 슬픔'으로 출발한 '아시아 문학선'은 21권으로 이번 책을 출간했고, 앞으로 한국 작가 신작 장편소설과 창작집을 엄선해 선보일 계획이다.
22권으로는 일본 오키나와를 지키는 작가 메도루마 슌의 장편소설 '무지개 새'가 독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아시아. 360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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