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집권 1주년을 앞둔 말레이시아 신정부가 인종갈등에 발목을 잡혀 눈에 띄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8일 말레이메일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는 지난 5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관한 로마 규정을 비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마하티르 총리는 "이런 결정은 (ICC 가입에) 반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기득권 세력에 의한 정치적 혼란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에 내려졌다"면서 "이는 내 이름을 더럽히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나를 쉽게 몰아내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말레이 정부는 지난달 초 로마 규정에 서명했지만, 비준 절차를 밟지는 않은 상태였다.
작년 5월 총선에서 61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뤄낸 말레이 신정부는 '부미푸트라'로 불리는 말레이계와 원주민(61.7%)이 대거 야권 지지로 돌아서면서 국정 동력이 약화하고 있다.
말레이계와 원주민은 지난 수십년간 사회적 약자 보호 정책의 하나로 말레이계에 대입정원 할당과 정부 조달 계약상 혜택 등 특혜를 받아왔다.
이런 정책은 빈곤에 허덕이던 말레이계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극적으로 향상했으나, 민족 간 격차가 완화된 뒤에도 계속 유지돼 중국계(20.8%)와 인도계(6.2%) 등에 대한 차별 정책으로 변질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올해 5월 총선에서 승리해 집권한 여당 연합 희망연대(PH)는 부미푸트라 정책이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말레이계의 자립 의지를 꺾는다는 판단에 이를 완화하려다가 말레이계의 반발에 부닥쳤다.
말레이계 무슬림은 작년 12월에는 인종이나 피부색, 가문, 민족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유엔 인종차별철폐협약(ICERD)에 가입하면 말레이계 우대정책이 폐기될 것이라면서 대규모 집회를 열어 비준을 무산시켰다.
지도부의 부패 의혹 등 악재에 시달리다가 정권을 상실한 야당 연합 국민전선(BN)은 이를 기회로 삼아 전통적 지지층인 말레이계를 재결집하고 있다.
실제로 BN은 올해 1월 말 카메론 하이랜즈 지역에서 치러진 하원의원 보궐선거와 지난달 슬랑오르주 스므니 지역에서 치러진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잇따라 승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에는 조호르주의 술탄 이스칸다르가 로마 규정 비준은 말레이시아 각 주 최고지도자의 면책특권을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는 등 일부 왕족도 야권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그런 가운데 말레이 신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현지 시장조사기관인 카지다타 리서치는 작년 12월 1일부터 한 달간 전국 주민 9천71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PH에 대한 직무수행 만족도가 57.2%에 그쳐 작년 총선 전보다 16.4%포인트 낮아졌으며, 특히 20대 젊은 층에서 만족도 하락 폭이 가장 컸다고 밝혔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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