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공군 수송기로 '시체' 옮겨…행불자 가능성

입력 2019-04-08 11:11   수정 2019-04-08 17:05

5·18 당시 공군 수송기로 '시체' 옮겨…행불자 가능성
육군본부 작성한 '소요진압과 그 교훈' 문건에 김해로 '시체' 운송 기록
사망 군인 '영현'표현과 비교돼…당시 사망군인 성남비행장 운송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공군 수송기로 '시체'를 옮겼다는 군 기록이 나왔다.
5·18 당시 시신조차 찾지 못해 행방불명자로 남은 희생자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7일 육군본부가 1981년 6월 작성한 '소요진압과 그 교훈'이라는 문건에는 5·18 당시 공군 수송기 지원 현황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이 가운데 5월 25일 광주-김해 구간을 기록한 부분에는 의약품과 수리부속품을 운송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비고란에는 시체(屍體)라고 적힌 한자가 적혀있다.
당시 공군 수송기가 김해에서 의약품과 수리부속품을 싣고 광주로 왔다가 돌아가면서 시체를 운송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군 수송기가 옮긴 시체는 군인 사망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임무 수행 중 사망한 군인은 '시체'라고 표현하지 않고 '영현(英顯·죽은 사람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으로 기록하는 데다 오인 사격 등으로 사망한 23명의 군인은 모두 성남비행장으로 옮겨졌다.
다른 문건에선 관련 기록을 의도적으로 삭제·누락한 정황도 발견됐다.

공군이 5월 21일부터 29일까지 작성한 '5·18 광주소요사태 상황전파자료'에도 5월 25일 운송 화물에 대한 기록은 수정액으로 삭제돼 있다.
1982년 2월 육군본부가 작성한 '계엄사' 기록에도 유독 5월 25일자 광주-김해 운항 기록만 누락돼 있다.
이 때문에 5·18 당시 계엄군에 희생된 시신을 공군 수송기로 빼돌리고 기록을 지우려 했던 것 아니냐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조선대학교 노영기 교수는 "(소요진압과 그 교훈 문건은) 군이 소요진압을 한 다음에 재편집한 것이기 때문에 시체를 옮겼다는 자료의 신뢰성이 매우 높다"며 "여러 정황상 운송한 시체는 행방불명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5·18 당시 행방불명자로 신고된 사람은 모두 242명으로 광주시가 인정한 행방불명자는 82명이다.

이 가운데 6명은 2001년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의 무명열사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신원이 확인됐다.
나머지 76명의 행방불명자는 지난해까지 암매장 추정지 등 광주 인근 11곳을 발굴 조사했지만 단 한 명도 찾지 못했다.
한편 행방불명자의 규모와 소재, 암매장지 확인 및 유해발굴 등은 지난해 3월 제정된 5·18특별법에 따라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대상이다.
in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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