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1운동.임정 百주년](65) 한완상 "광복, 아직 안 왔다"

입력 2019-04-10 12:00   수정 2019-04-11 13:13

[3ㆍ1운동.임정 百주년](65) 한완상 "광복, 아직 안 왔다"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 맡아 진두지휘…"남북 평화와 통일이 진정한 광복"
"3ㆍ1 운동은 충격적일 정도로 선진적인 사건…친일세력 반공교육으로 3·1 정신 제대로 안 알려져"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아직 광복은 오지 않았다."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이하 위원회) 위원장인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는 지난 1일 정부서울청사 사무실에서 한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1945년 이후 광복 대신 분단이 왔다"며 "남북이 평화롭게 지내면서 하나의 통일국가로 갈 때 진정한 광복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대 교수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 교육부총리를 지낸 한 위원장은 "3·1운동의 정신은 가르치고 또 가르쳐야 한다"며 "지금 우리는 3·1운동 정신을 100년이 지나 이어받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3·1운동은 충격적일 정도로 선진적이었다"며 "당시 인구의 10% 이상이 참여했고 어린 소녀들도 들고일어났으며 다른 약소국들에 비폭력 평화운동의 동기를 불어넣었다"고 의의를 설파했다.
위원회는 지난해 7월 출범 이후 반년 가까운 토의를 거친 끝에 3·1운동과 임정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104개 사업을 펼쳐나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3·1절부터 임정 수립 기념일인 11일까지를 '100주년 기념주간'으로 설정해 다양한 행사도 개최했다.
한 위원장은 "남북이 민주국가, 평화로운 국가, 창의적인 문화국가가 되는 것이 소원"이라며 "지금 맡은 일이 이런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다음은 한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

--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의미는.
▲ 3·1운동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그 울림이 선언에 나오는 말보다 훨씬 더 강하고 깊고 파장이 넓다. 인구의 10% 이상이 참여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서구 사람들도 이 소식을 듣고 굉장히 놀랐을 것이다. 당시 미국의 작은 주인 몬태나주의 한 신문에까지 '한국의 젊은 여자 학생들이 운동을 이끌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서구 입장에서 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19년 당시 미국엔 여성 참정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3·1운동은 굉장히 충격적일 정도로 선진적이었을 것이다.
-- 세계사적으로 선구적이고 유례가 없었다는 것인가.
▲ 그렇다. 그 선진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한다. 100년 전 선배들은 족탈불급(足脫不及·맨발로 뛰어도 따라가지 못한다)으로 오늘날의 대한민국 국민들을 앞서갔다. 지난번 촛불혁명 당시 연 1천700만명이 5∼6개월간 참여했는데 왜 폭력 사건이 하나도 없었는지를 설명하려면 3·1운동을 말해야 한다. 100년 후에야 선배들을 따라간 것이니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3·1운동은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우리 민족 자체를 격동시켜서 나서게 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 등의 다른 약소국들에도 비폭력 평화운동의 동기를 불어넣어 준 것이다.
-- 3·1운동의 의미를 계속해서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 젊은이는 물론 노인들도 그 의미를 잘 모른다. 지금 내 나이인 노인들은 일본강점기 때 학교에 다니다가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서 우리 교육을 받기 시작했는데 분단 이후 우리나라를 지배한 것은 친일세력이다. 분단 이후 국가 간 이념적 경쟁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이라는 열전과 냉전을 60여년 간 거치는 과정에서 서로 악마화하는 반공 교육이 이뤄졌다. 그런 교육을 주도한 대한민국의 정치 엘리트들에게는 3·1운동의 비폭력 평화 정신은 불편했을 것이다.
1945년 해방 이후 광복은 오지 않고 분단이 왔다. 사회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 둘로 나뉘면서 서로 박살 내려고만 하니까 비폭력 평화운동이라는 3·1운동의 정신이 교육에 들어갈 틈이 없었다.
-- 그렇다면 진정한 광복이란.
▲ 남북이 평화롭게 지내면서 하나의 통일국가로 가는 것이 광복이다.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은 패전하면 국제법에 따라 값을 치러야 한다. 나라가 분단되는 것이다. 히틀러 패망 이후 전승국이 독일을 동서로 나눴는데 마땅한 징벌이었다. 그렇다면 태평양전쟁에서는 일본이 졌는데 왜 패전국인 일본은 분단이 안 되고 우리가 됐는가. 이런 질문을 초·중·고·대학에서 가르쳐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왜냐? 그 사람들의 정신이 친일이고 냉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3·1운동의 가치가 빛이 바랬다. 그 사람들은 촛불 시민혁명이 3·1운동의 비폭력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하면 펄쩍 뛴다. 그 사람들이란 분단 이후 이 나라를 줄기차게 지배해 온 세력을 말한다.


-- 현재 맡은 직무의 교육적 의미가 작지 않은데.
▲ 3·1운동은 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교육적인 감동을 많이 지닌 운동이다.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끝없이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잘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면 가슴 아프다.
-- 앞으로 100년의 가장 큰 과제는.
▲ 우리 조국의 통일이라기보다는 평화라고 말하고 싶다. 1945년 8월 15일 온전한 평화로 하나 되는 민족해방과 민족광복을 채 못 했다. 한반도라고 하는 조국 강토가 적어도 고려 시대 이후 천년 가까이 우리의 존엄한 땅이었는데 분단이 됐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다. 분단을 평화적으로 종식하는 것이 참다운 한반도를 위한 과제다.
앞으로 100년간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는 데 3·1운동의 정신이 필요하다. 평화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안 해본 것을 하기는 힘들 테니 100년 전 우리 조상이 했던 일을 우리가 따라가자는 것이다.
-- 위원회가 북한과 여러 사업을 함께 하려고 했다가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는데.
▲ 북한과 미국의 하노이 회담은 결렬됐다기보다는 무산됐다.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중이어서 함부로 얘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원래 지난해 9·19선언에서 3·1운동 기념행사를 공동으로 하자고 얘기했는데 하노이 회담이 올해 2월 27∼28일로 정해지는 바람에 삼일절 행사를 같이하기 어렵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국내정치 상황을 고려해서 날짜를 정한 것 같다.
-- 앞으로 남북 관계에서 바라는 점은.
▲ 남북 평화가 정착해서 북한과 함께 갔으면 좋겠다. 우리가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잘 사는데 북이 따라오지 못한다면 (남북이) 오래 갈 수가 없다. 내가 형제 중 맏형인데 바로 아래 동생이 굉장히 못 살면 어떤가. 관계가 좋아지겠는가. 형이 껴안고 가면서 너도 같이 좋은 점 나누자고 해야 한다. 형은 너무 잘 살아서 고대광실을 꾸며놓고 화려하게 사는데 바로 옆 동생들이 천막치고 산다면 그건 불행이다.
-- 100년에 한 번 돌아오는 기념사업을 이끈 소회는.
▲ 죽기 전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있다면 남북이 서로 다투거나 악마화하지 않고 동포로서, 형제자매로서 포용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민주국가, 가장 평화로운 국가, 창의적인 문화국가가 되는 것이다. 지금 맡은 일이 이런 꿈을 이룩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정말 가치 있다. 이 자리가 그런 자리라고 생각한다.
j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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