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같은 지휘자, 판타지 영화 같은 말러 교향곡

입력 2019-04-08 16:28  

영화감독 같은 지휘자, 판타지 영화 같은 말러 교향곡
조너선 노트와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리뷰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결코 '비극적'이라는 부제에 얽매이지 않았다. 조너선 노트가 그려낸 말러의 교향곡 6번은 비극적이기도 희극적이기도 했으며, 판타지 영화를 방불케 할 만큼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악상으로 가득했다. 말러의 음악이 담고 있는 만화경 같은 세계를 그보다 더 잘 표현해낼 수 있는 지휘자도 드물다.
지난 7일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선 지휘자 조너선 노트와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는 말러의 교향곡 가운데서도 까다로운 작품으로 꼽히는 교향곡 6번으로 국내 음악애호가들을 사로잡았다. 연주시간 80분에 달하는 말러의 교향곡 6번이 a단조의 코드로 마무리되자마자 객석에선 곧바로 큰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비극적'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말러의 교향곡 6번은 4악장에 등장하는 거대한 나무망치의 타격이 비극을 예견하는 작품으로 해석되곤 하지만, 지휘자 조너선 노트와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으면서 이 작품에 대한 그와 같은 고정관념을 버릴 때가 되었음을 느끼게 됐다.
조너선 노트는 이 교향곡에 붙어있는 '비극적'이라는 부제에 얽매일 만큼 상상력이 빈약한 음악가가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 있던 온갖 판타지가 말러의 교향곡 6번의 연주를 통해 드러날 때마다 관객들은 그 신비로운 음악 세계에 한껏 빠져들며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음악에 몰입했다.



조너선 노트는 악보에 드러난 거의 모든 지시와 주요 모티브들을 분명한 지휘 동작으로 표현해내는 지휘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리드했는데, 그의 모습은 마치 탁월한 군사전략가나 혹은 유능한 영화감독처럼 보였다. 연주할 작품에 대해서 사전에 철저한 전략을 세우고 오케스트라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확신에 찬 태도로 분명하게 '큐' 사인을 보내는 그의 명확한 지휘 덕분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안심하고 마음껏 기량을 발휘하는 듯했다. 작곡가 말러가 악보에 적어놓은 주요 모티브 하나하나가 생기 있는 소리로 살아 올랐고, 관객들은 그 생동감 넘치는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말러 교향곡 6번의 전 악장 가운데서도 빠른 스케르초 악장의 연주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말러의 교향곡 악장들 가운데 가장 악마적인 성격을 보여준다고 평가되는 스케르초 악장의 첫 팀파니의 울림에서부터 마치 거인의 발걸음 소리처럼 강력한 에너지가 전해졌고, 저음역에서 그르렁거리는 금관악기의 울림은 무시무시한 용의 신음 같았다.
반면 이 악장에서 '그라지오소'(grazioso·우아하게)라고 표기된 부분에서 지휘자는 템포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 오보에가 연주하는 단순한 선율을 더욱 부각했고, 그 덕분에 앞서 들려왔던 금관악기의 무시무시한 음향과 오보에의 선율이 확실하게 대비를 이루며 말러 음악 속에 담긴 이중적인 측면을 드러냈다.
공연 전반부에는 손열음의 피아노 협연으로 연주된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가 연주됐다. 대개 슈만의 곡을 연주할 때 서정적인 측면만을 부각하기 쉽지만, 손열음은 탁월한 타이밍 감각과 적절한 강약 조절을 통해 슈만 음악에 담긴 활기 넘치는 리듬의 묘미까지 살려낸 연주로 청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특히 1악장 중간 부분에서 오케스트라의 목관악기와 피아니스트가 조화되는 부분에서는 마치 실내악을 연주하듯 정교한 앙상블이 펼쳐져 인상적이었다.



손열음은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연주를 마친 후 다소 특별한 앙코르 무대를 선보였다. 그는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서 이번 음악회에 참여한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와 함께 슈만의 로망스 작품94의 2번을 함께 앙코르로 연주했다. 서울시향의 악장으로 활동했던 스베틀린 루세브가 국내 음악애호가들에게 익숙한 만큼, 손열음과 루세브의 깜짝 앙코르 무대는 더욱 반가웠다.
herena88@naver.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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