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농식품 화물차 기사 60여명 "갑작스러운 계약해지에 길바닥 나앉아"
농협 "근로자 아닌 개인사업자…단체행동 막으려 확약서 제시것일뿐" 해명
(안성=연합뉴스) 최해민 기자 = 농협물류가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화물차 기사 수십명을 무더기로 계약 해지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기사들은 생계 문제가 걸린 만큼, 9일 서울 서대문 농협중앙회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삭발식까지 진행했다.
화물연대 서경지부 농협물류안성분회와 농협물류 등에 따르면 농협물류 안성농식품 물류센터에서 일해 온 화물차 기사 81명은 지난 2월부터 3월 사이 화물연대 산하 노조에 가입했다.
기사들은 2013년 물류센터 개장 이후 동결돼 있던 운송료의 20% 인상, 강원도 등 장거리 운행 시 수당 신설, 설과 추석 당일 단 2일뿐인 공식 휴무일 확대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농협물류는 지난달 말일까지 운송료 5% 인상안 등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했다.
계약 해지일이 다가오자 노조원들은 운송료 5% 인상만이라도 받아들이겠다고 했으나 농협물류 측이 갑자기 '확약서'를 내밀며 "운송 관련 단체 등에 가입하지 않을 것을 확약한다"는 문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현재까지 81명 가운데 10여명은 농협물류가 확약서를 제시하기도 전에 계약했으나 나머지 60여명은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농협물류안성분회 관계자는 "평균 5년 넘게 이곳에서 물류를 담당했는데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건 노조 탄압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그동안 1년에 공식 휴일은 2일밖에 되지 않아 기사들끼리 대신 일을 맡아주면서 돌아가며 주중 하루씩 쉴 정도로 열악하게 일해왔으나, 한 달 꼬박 일해도 손에 쥔 건 160만원 정도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기업도 아닌 국민의 혈세로 설립된 농협의 자회사인 농협물류에서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생존권을 박탈하는 방법으로 탄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화물차 기사 A씨의 지난 2월 급여 명세표를 보면, 총급여는 550만여원, 유류비 150만여원과 도로통행료 36만여원 등을 제하고 나면 월 급여는 300만원 정도다.
A씨는 여기에 차량 보험료, 지입료, 소모품 교환비, 감가상각비 등을 공제하면 한 달 수입은 160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한다. 2월 한 달간 A씨가 운행한 거리는 8천㎞를 넘었다.
이에 대해 농협 관계자는 "3월 말로 예정된 정상적인 계약 만료 시점에 따라 계약을 종료한 것일 뿐 노조에 가입했다고 해서 계약을 해지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확약서 내용이 노조 탄압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화물차 기사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는 개인사업자일 뿐"이라며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조를 만들 수 없는데 화물연대 측에서 단체 교섭을 하자고 요구해왔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확약서를 제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통상 물류업계에서 많이 하는 내용으로, 법률 자문받아서 했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며 "60여명에 대해서도 계약 해지로 사안을 끝낸 것이 아니어서 아직 협의 중이다"고 덧붙였다.
윤선호 민주일반연맹 기획실장(공인노무사)은 "화물차 기사나 학습지 교사 등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지위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맞지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할 가능성이 커 사회 전반에서도 한창 논의가 되는 직종"이라며 "노조 가입 자체를 이유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면 노조 탄압으로 볼 여지가 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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