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 안 한 경우만 친자 부정' 판례, 36년 만에 변경 필요성 놓고 의견수렴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다른 사람의 정자로 인공수정해 태어난 자녀를 남편의 친자식으로 추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대법원이 공개변론을 열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오는 5월 22일 오후 2시 대법정에서 송 모씨가 자녀들을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소송 상고심 사건의 공개변론을 연다고 9일 밝혔다.
이 사건은 다른 사람의 정자로 임신·출산한 점 등이 확인돼 혈연관계가 없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된 경우에도 민법상 '친생자 추정 원칙'을 고수해야 하는지가 쟁점이다. 현재 판례는 부부가 동거하지 않았을 때 생긴 자녀만이 친생자 추정 원칙의 예외로 인정된다.
송씨 부부는 송씨의 무정자증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자 1993년 다른 사람의 정자를 사용해 인공수정으로 첫째 아이를 낳은 뒤 두 사람의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이후 1997년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무정자증이 치유된 것으로 착각한 송씨가 이번에도 부부의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마쳤다.
2014년 가정불화로 아내와 이혼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둘째 아이가 혼외 관계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고, 송씨는 두 자녀를 상대로 친자식이 아니라며 소송을 냈다. 법원이 시행한 유전자 검사결과 두 자녀 모두 송씨와 유전학적으로 친자관계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1·2심은 "무정자증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부인이 남편의 자식을 임신할 수 없는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송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부가 동거하지 않은 등의 명백한 외관상 사정이 존재한 경우에만 추정이 깨질 수 있다'고 판단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1983년 판례에 근거한 판단이었다.
송씨의 상고로 사건을 넘겨받은 대법원은 유전자 확인기술이 발달한 점을 고려해 36년 전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판단해 사건을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대법원은 이 판례가 변경될 경우 가족관계의 형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부양·상속 등의 문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새로운 임신과 출산 모습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법적·의학적 문제와 관련 제도에 미칠 파장도 적지 않다고 보고 공개변론을 열어 각계의 의견을 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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