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늦은 시간까지 집요한 구걸로 대가족 생계 보태
혼잡한 도로서 교통사고 사망…7살 동생이 구걸 이어가
(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은 전쟁과 빈곤 속에 살다 교통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한 아프가니스탄 11살 소년의 사연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8일(현지시간)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가족을 위해 구걸하며 살던 소년 하미드 타히르가 최근 교통사고로 떠난 소식을 소개했다.
유엔아프간지원단(UNAMA)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 속에 18번째 봄을 맞는 아프간에서는 지난해에만 테러를 포함한 전쟁 관련 폭력으로 민간인 3천804명이 숨졌고, 이중 어린이는 4명 중 1명꼴인 927명이다.
또 아프간은 1천명의 아기 중 110명꼴로 첫 돌을 넘기지 못해 세계 최악의 유아 사망률을 기록하고 있다.
아프간의 이런 냉혹한 현실을 고려하면 그의 죽음은 금세 일상에 묻힐 작은 일일 수 있지만, 그 또한 전쟁의 피해자라는 게 WP의 설명이다.
초등학교 3학년의 하미드는 하루 3시간을 학교에서 보낸 뒤에는 혼잡한 거리의 한쪽에서 음식과 돈을 구걸하던 소년이었다.
가난한 농부였던 부모는 1980년대 무자헤딘 반군과 소련군 간 싸움을 피해 고향을 떠났다.
수년 후 아버지는 도로에 매설된 폭발물이 터지면서 다리 한쪽을 잃었고, 생계를 맡게 된 엄마는 청소 일을 하면서 겨우겨우 9명의 아이를 부양했다.
실업자가 넘치고 무장세력의 위협이 상존해 있는 복잡한 도시에서, 하미드는 수완을 발휘해 가족들의 생존을 도왔다.
그의 '일터'는 외교 공관과 사무실이 밀집한 카불 시내의 부유한 지역인 와지르 아크바르 칸의 한 로터리 주변이었다.
매일 오전이 채 끝나기 전부터 어둠이 내린 후 한참까지 하미드는 슈퍼마켓 앞쪽에 자리 잡고는 자선을 베풀 사람을 찾아 주변을 살폈다. 곁에는 7살의 동생 파리드를 두고 눈을 떼지 못했다.
로터리 주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미드를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미드가 항상 걸인들과 행상인들 사이에서 놀고 있었으며, 실제 나이보다 더 어른스럽게 행동했다고 기억했다.
휴대전화 카드를 판매하는 메흐라부딘은 워싱턴포스트에 "장난기가 많았지만, 들어보면 어린이처럼 말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하미드는 종종 만나는 여성에게는 영어로 "사모님, 초콜릿"(Madam, chocolate)이라며 웃음을 띤 얼굴로 다가갔으며,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집까지 집요하게 따라가기도 했다.
그런데도 소득 없이 결국 경비원들에게 쫓겨갈 때는 "내일, 초콜릿"(Tomorrow, chocolate)이라며 다음을 기대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하미드의 고단한 일상은 지난달 끔찍한 교통사고로 막을 내렸다.
그는 차량과 사람들로 복잡한 도로를 건너다 과속을 하던 택시에 치였고, 차량에 한 블록가량 끌려갔다가 결국 병원에서 숨졌다.
아버지 모하메드(48)는 "아들 중에서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던 아이였다"며 "영리했고 열심히 일했다. 자기가 크면 가족들이 다시는 쫓겨나는 일이 없도록 땅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했다"라고 말했다고 WP는 전했다.
하미드의 생전 일은 어린 동생 파리드가 이어받았고, 파리드는 형이 있던 자리에서 지나는 사람들에게 "초콜릿, 사모님?"(Chocolate, Madam?)이라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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