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에서 시작된 벽지, 다시 그림이 되다

입력 2019-04-09 16:38  

벽화에서 시작된 벽지, 다시 그림이 되다
중견작가 정소연, '벽지 그림' 이화익갤러리 전시…"웬만한 그림보다 낫다"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밋밋한 이미지 때문에 한때 '벽지 그림'으로 폄하 받던 단색화는 최근 수년간 가격이 폭등했다. 단색화 독주는 다른 미술가들에게도 갖가지 생각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홀마크 카드와 동·식물 도감, 건축 모형 등 구상적 형상을 캔버스에 담아온 중견작가 정소연(52)이 '벽지 그림'을 떠올린 것은 작업실에 머무르던 2017년 어느 날이었다.
"갱년기에 접어들어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고 우울한 마음에 벽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어요. 단일한 바탕색 벽지에 마티에르가 있는 것이 단색화 패턴이더라고요." 특히 벽에 기댄 빈 액자를 통해 바라본 벽은 단색화와 너무나 닮았다.
작가는 "웬만한 그림보다 벽지가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면서 "면벽공심 목표는 멀리 사라지고 벽지를 그리고 싶어졌다"라고 전했다.
10일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개막하는 정소연 개인전 '면벽수행'은 그렇게 벽만 바라보다 시작한 벽지 작업 40여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작가는 다양한 벽지를 사다가, 그 무늬를 캔버스에 사실적으로 옮겨 그렸다. 그렇게 완성한 '벽지 그림'을 같은 패턴의 벽지에 붙여놓고, 다시 그 모습을 그리는 식으로 겹을 더했다. 실제 벽지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사실감이 뛰어나지만, 공간에서 깊이를 생략했다는 점에서 추상과도 통하는 작업이다.
그는 갱년기 우울감 속에서 그린 '벽지 그림'이 화사하다는 이야기에는 "우울하다고 해서 일부러 회색 같은 색을 쓰지 않으려 했다. 어떻게 보면 핑크가 제일 애잔한 색"이라고 답했다.
'벽지 그림'은 기존 작업과 이미지는 전혀 다르지만,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한 '실재와 이미지'라는 화두와 맞닿아 있다. 작가는 "벽지라는 것도 원래 벽화에서 시작된 만큼, 저는 다시 벽지를 그림으로 돌려놓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30일까지.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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