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출신 '성소의 건축가'…완공 앞둔 남양성모성지 성당 설계
"아무리 하늘로 치솟아도 건축물이란 땅에 발붙인 존재"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너른 언덕에 자리한 남양성모성지. 153년 전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천주교 신자의 피가 뿌려진 이곳에 두 개의 붉은 탑이 우뚝 섰다. 스위스 출신 건축가 마리오 보타(76)가 설계해 연내 완공을 앞둔 통일기원 남양성모마리아 대성당이다.
"건축은 미래를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과거를 담는 것입니다. 위대한 과거에는 우리가 현재 안고 있는 문제(해법)가 들어 있어요. 파블로 피카소 그림이나 헨리 무어 조각 같은 모든 위대한 예술은 위대한 과거에 뿌리를 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9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을 찾은 보타는 수백 명의 관중을 향해 "건축은 그 자체가 기억의 영역이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서울극장은 남양성모마리아대성당을 비롯한 보타 작업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오 보타, 더 스페이스 비욘드'와 보타 강연을 들으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보타는 단순한 외관의 건축물에 전통과 지역적 특색을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이날 강연에서 내세운 건축의 필수 요소도 '기억'과 '중력'이었다.
보타는 영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남양성모마리아 대성당의 역사적·종교적 맥락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땅에 (건축물을) 짓는 데 더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털어놓았다.
'중력'도 건축의 존재 이유다. "아무리 하늘로 치솟고 날아갈 듯해도 건축물이란 결국 땅에 발을 붙인 존재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중력은 고대 건축에서도 매우 중요했던 요소입니다."
거장의 반열에 오른 보타를 가장 빛나게 하는 건축물은 성소(聖所)다.
프랑스 에브리 대성당, 스위스 모뇨 교회 등 세계에서 손꼽히는 종교 건축물 다수가 보타 손을 거쳤다. 그는 이슬람 사원과 유대교 회당 설계도 맡았다. 그에게 이슬람 사원 설계를 의뢰한 한 건축주는 영화에서 "어떤 종교를 믿든 간에 보타의 건축물에서는 신성한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보타는 빛과 그림자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보타는 "빛은 공짜여서 빛을 활용해 공간을 만들고 형태를 빚어내는 일은 항상 즐겁다"라면서 "빛이야말로 공간을 장악하는 진정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로마 판테온의 진정한 기적은 하늘을 향해 뚫려 있는 (돔) 구멍에 있습니다. 이 구멍을 막으면 판테온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교보타워 강남, 삼성미술관 리움, 제주 아고라 등 국내에도 기존에 지어진 보타 작업이 꽤 있다. 보타는 교보타워 강남을 두고 "길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하나의 탑을 세우자는 인식에서 출발했다"라면서 "2개의 붉은 탑은 성의 귀퉁이를 구현했는데 서울의 일반적인 건물들에 대응하는 강력한 힘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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