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엔권 초상 '사업가' 시부사와 선정에 비판 여론
日언론, '경제침탈 상징' 연합뉴스 등 韓언론 비판 소개
발표 시기 놓고 '아베 개헌 야욕 반영' 지적도 나와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 정부가 전날 발표한 새 지폐 속 인물들과 관련해 일본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1만엔(약 10만원)권에 그릴 새 인물인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1840~1931년)에 대해서는 국가 주도 자본주의의 상징이라고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그가 '한반도 경제침탈의 상징'이라고 지적한 연합뉴스 등 한국 언론의 비판을 소개하기도 했다.
도쿄신문은 10일 전날 발표된 새 지폐의 초상 인물에 대해 "실리실학 분야에 치우쳐져 있다"는 야마다 아키라(山田朗) 메이지대(일본근현대사) 교수의 분석을 전했다.
야마다 교수가 주목한 인물은 시부사와 에이이치다.
그는 메이지(明治)와 다이쇼(大正) 시대를 풍미했던 사업가로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정경 유착으로 부를 축적한 인물이기도 하다.
야마다 교수는 "시부사와가 경제 발전과 근대화를 이끌었지만, 이는 국가 주도 자본주의를 통해서였다"며 "국책회사와 군수산업을 통한 경제 발전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그리는 경제발전, 국가와 경제계의 관계와 연결된다"고 덧붙였다.
시부사와는 일본이 패전(1945년) 이전에 '수신'(修身)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한 도덕 교육의 교과서에 실리기도 한 인물이다. 수신 과목은 군국주의 사고방식을 주입하는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전후 폐지됐다.
한국에서는 구한말 철도와 전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 침탈에 앞장선 인물로 비판받고 있지만, 시부사와는 일본에서는 '도덕경제합일설'로 유명하다. '개인의 이익=국가의 이익=공익'이라는 사고 방식을 제창했고, 이는 일본 경제의 기본 틀이 됐다.
야마다 교수는 "시부사와는 국가와 보조를 맞추면서 기업을 일으켰다. 이는 최근의 '도모다치(친구)'와 비슷한 느낌이다"고 말했다.
아베 내각은 지인들의 이권에 연루되면서 '친구 내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시부사와의 경영 방식이 아베 내각의 경제 정책 추진 방식과 일맥상통한다는 지적이다.
시부사와는 당시 구한말 실력자로 안중근 의사가 암살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와 가까운 사이였다.
시부사와가 1만엔권의 새 '얼굴'이 된 것에 대해 일본 언론들은 한국 언론들의 비판을 소개하기도 했다.
공영방송 NHK는 연합뉴스의 보도를 인용해 시부사와가 일본에 의한 한반도 침탈의 주역이라는 비판이 한국에서 일고 있다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문, 산케이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도 한국에서의 비판론을 알렸으며 아사히신문은 그가 구한말 제일은행이 조선에서 발행한 지폐에 등장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일본 언론들은 새 지폐 발행 계획이 기습적으로 발표된 것을 놓고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아베 정권이 새 연호(레이와) 발표와 함께 지폐를 쇄신해 올해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 이슈를 띄우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평론가 이토 아쓰오(伊藤惇夫) 씨는 이와 관련해 도쿄신문에 "아베 정권이 국민들에게 '새로운 시대의 도래'라는 이미지를 갖게 해 참의원 선거를 개헌 여부를 묻는 선거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지폐 쇄신 발표는 아베 총리의 지지로 아소 다로 부총리가 주도하는 등 정권의 핵심 인물이 적극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새 지폐 발행이 경기부양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실제로 경제적인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전날 지폐 쇄신 발표 직후 다이이치세이메이(第一生命)경제연구소는 새 지폐의 경기 자극 효과가 1조3천억엔(약 13조3천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자동판매기와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변경하는 수요가 생기면서 경기가 부양될 것이라는 분석이지만, 이미 캐시리스(Cashless·무현금) 거래가 일반화한 상황에서 이런 효과는 한정적이어서 소비자와 소매업자들에게 불편만 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마이니치신문은 새 연호 발표 후 아베 정권의 지지율이 상승 효과를 보고 있다면서 아베 정권이 새 연호 발표와 지폐 쇄신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야권의 비판을 소개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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