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아귀는 가난했던 시절 부두 인근 사람들의 한 끼를 돕던 물고기였다. 인천에선 물텀벙이라 불렀다.
아귀는 또한 불교 용어이기도 하다. 목마름과 배고픔 등으로 고통스러운 세상에 사는 중생을 뜻한다. 어쩌면 아귀가 아귀를 구한 셈이다.
이런 아귀의 매력은 무얼까? 아귀 요리의 본고장인 인천의 물텀벙거리를 다녀왔다.
아귀의 외모는 흉측스럽다. 머리가 과도하게 크고, 몸통은 작은 기형 어류다. 가만 보면 머리만 둥둥 떠서 다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게다가, 이빨도 날카로워서 어쩌면 지옥에서 온 괴물처럼 보일 지경이다.
아귀는 주로 서해와 남해의 깊은 수심에서 잡히는데, 예전 인천 앞바다 어부들은 못생긴 아귀를 잡으면 재수 없다고 해서 바다에 '텀벙' 던져버렸다고 한다.
◇ 물텀벙의 유래와 현재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버리기는커녕 없어서 못 먹는다. 식도락의 인기 메뉴가 된 것이다.
50년 전 인천항에서 가까운 남구 용현동에는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물텀벙을 미나리와 콩나물 등을 가득 넣고 끓여 팔거나, 고추장 양념에 졸여서 내놓는 식당이 생겨났다.
용현동에는 부두 하역 노동자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아귀로 만든 저렴한 요리들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술 한 잔을 털어 넣은 뒤 씹어먹는 아귀는 고달픈 하루를 마감하며 지친 영혼을 달랠 수 있는 '소울 푸드'가 됐다.
인천시 남구 독배로 403번길 일대 용현동 네거리에는 문을 연 지 48년 된 성진물텀벙이 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이라면 이곳 1층 카운터 뒤의 영업신고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최초 신고 일자가 1972년 1월 26일이다.
식당이 인기를 끌자, 주변에 비슷한 가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물텀벙 거리가 된 것이다.
가게 수는 10여 곳이 넘었고 1999년 이곳은 '물텀벙 특화음식거리'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물텀벙의 인기는 예전 같지 않다. 이제 먹고살 만해지면서 다른 맛난 것들이 넘쳐나기 때문일까? 지금은 아귀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 네 군데 남아 있다.
성진물텀벙은 원조로 알려지면서 2005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녀가기도 하는 등 유명인사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 식당 관계자는 성진물텀벙의 장수 요인으로 신선한 재료와 전통적인 맛 등을 꼽았다.
여기에 최근에는 주차공간도 중요하다. 고객들이 승용차로 손쉽게 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차공간을 갖추지 못한 곳들은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 아귀란 물고기는?
아귀는 못생긴 외모와는 반대로, 부위에 따라 맛이 다양한 물고기다.
아가미와 껍질, 꼬리와 지느러미까지 못 먹는 부위가 없다. 4∼5㎏짜리 아귀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이마에 불빛을 달고 물고기를 유인해 잡아먹는 초롱아귀는 각종 일러스트 등에서 아귀의 대명사처럼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800m 심해에 사는 초롱아귀는 식재료로 사용될 일이 없다.
우리가 먹는 일반 아귀는 수심 70∼250m의 바닷속에 산다.
◇ 술친구 아귀
아귀는 철분과 인이 풍부해 빈혈에 좋다고 한다. 타우린 성분이 있어 숙취 해소의 효과도 있다.
그래서 전날 한 잔 거하게 한 술꾼들이 해장을 위해 찾는 메뉴가 됐다.
남성들에게는 아귀탕이 인기가 있는 데 비해 여성들에게는 다양한 음식 재료들이 고소하게 씹히는 맛을 내는 아귀찜이 인기다. 껍질에 있는 콜라겐 성분은 피부 미용에도 도움이 된다.
◇ 물텀벙 요리·먹는 법
아귀에 콩나물과 미나리, 미더덕, 쑥갓 등 재료 10여 가지를 듬뿍 넣고 볶으면 상큼한 맛이 나는 아귀찜이 된다. 잘 살펴보면 새우도 들어있고, 떡볶이도 눈에 띈다.
우선 미나리와 콩나물 등 야채로 입맛을 돋운 뒤 잘 익은 아귀를 젓가락으로 건져 올려 고추냉이와 간장이 잘 조합된 소스에 찍어 먹으면 고소하고 달콤하다.
아귀찜을 먹고 난 뒤에는 볶음밥을 먹을 차례다.
2천원을 내면 김 가루 등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밥을 볶아준다.
◇ 가격
아귀찜과 아귀탕, 아귀 백숙, 아귀 지리 모두 크기에 따라 5만원, 4만5천원, 3만5천원이다. 볶음밥은 2천원이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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