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피하려다 당한 참변 70대 재조사 후 '사회재난' 판정
(고성=연합뉴스) 이종건 이재현 기자 = 지난 4일 고성산불을 피하려다 참변을 당했지만, 산불 사망자에서 제외돼 논란을 일으킨 70대 할머니가 우여곡절 끝에 산불 사망자에 포함됐다.
강원도 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4∼6일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강원산불로 인한 인명 피해를 기존 '사망 1명·부상 1명'에서 '사망 2명·부상 1명'으로 재집계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번에 산불 사망자로 추가된 피해자는 박모(71·여)씨다.
고성군 죽왕면 삼포리에 사는 박씨는 지난 4일 오후 9시 2분께 삼포 2리 이장의 산불 대피 안내방송을 들었다.
산불은 박씨가 사는 곳에서 20㎞ 떨어진 토성면 원암리 등지에서 강풍을 타고 확산 중이었다.
당시 최대순간풍속은 미시령 35.6㎧, 양양공항 29.5㎧, 고성 현내면 26.1㎧, 간성읍 22.4㎧ 등이었다.
서 있기조차 힘든 강풍에 산불까지 급속 확산하자 속초에 사는 박씨의 자녀들은 "강풍이 부니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전화를 박씨에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94세 친정 노모를 모시고 사는 박씨는 대피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1996년 고성산불 때 소 외양간을 잃었고, 2000년 동해안산불 때는 화마가 살던 집을 덮쳐 겨우 몸만 빠져나온 탓에 박씨에게는 산불 트라우마가 있었다는 게 유족들의 설명이다.
결국 박씨는 오후 9시 54분께 산불 대피를 위해 마을회관으로 가던 중 강풍이 주택 지붕과 처마가 덮쳐 그 충격으로 숨졌다.
지난 5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산불로 인한 사망자가 박씨를 포함해 2명이라고 발표했다가 인명 피해 집계과정에서 박씨는 산불로 인한 직접 피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망자에서 제외했다.
이에 박씨의 유족들은 "강풍이 불어 산불이 확산했고, 재난 문자메시지와 대피 방송을 듣고 집을 나섰다가 참변을 당했는데 산불 사망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또 "강풍 사고는 천재지변이라 재해로 집계하지 않는다는 말이 너무도 원통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박씨와 박씨 유족의 억울한 사연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고성군은 현지 조사를 통해 안전사고(개인 부주의)가 아닌 사회재난(산불)으로 인한 사망자로 다시 판단했다.
박씨 유족은 "이제라도 어머니의 억울한 사망이 제대로 인정돼 그나마 다행"이라며 "산불로 외양간과 집을 잃고 이번에는 목숨까지 잃으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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