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최북단 섬들을 가다] 투박하지만 따스한 섬 소청도

입력 2019-05-11 08:01  

[서해 최북단 섬들을 가다] 투박하지만 따스한 섬 소청도

(인천=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백령도에선 두무진 앞바다가 심청전에 나오는 인당수라고 하지만 소청도 주민들은 인당수가 대청도와 소청도 사이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곳 바다는 예로부터 풍랑이 심해 지나는 배들이 수없이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소청도는 그만큼 환경이 척박하고 사람이 살아가기 힘든 섬이다.



◇ 험한 바다와 소청도 사람들

지도에서 보면 대청도의 부속 섬인 소청도는 인천보다 황해도 쪽에서 접근하는 것이 훨씬 가깝다.
소청도가 그동안 여행지로 주목받지 못했던 것은 실상 이곳이 어업 전진기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어업이 아주 잘 돼 관광업이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어획량이 점차 떨어지면서 100가구 남짓한 작은 섬에 뭔가 새로운 동력이 필요해졌다. 인천시는 새로운 동력으로 관광업을 주목하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추진하는 '어촌 뉴딜 300' 사업과 관련해 탐사 목적으로 방문한 공무원들과 함께 소청도에 도착했는데 이 가운데는 관광 전문가도 한 명 있었다.



◇ 허벅지만 한 우럭이 '펄떡펄떡'

배에서 내려 숙소를 정하고 민박집으로 들어설 때 차에서 우럭을 내리는 민박집 주인과 맞닥뜨렸다. 우럭은 보통 어른 손바닥만 한데, 이 우럭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컸다. 거짓말을 좀 보태자면 어른 허벅지만큼이나 했다. 이렇게 큰 우럭 몇 마리가 상자에 담겨 민박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 하니 민박집 주인은 투박한 말투로 만류한다. "이렇게 작은 걸 왜 찍느냐"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 우럭은 그날 저녁 민박집 저녁 메뉴로 등장했다. 갓 잡은 우럭으로 끓인 매운탕은 두말할 것 없이 신선하고 고소했다. 소청도에서는 자연산이냐 양식이냐를 두고 따질 필요가 없다. 100% 자연산이기 때문이다.

◇ 국내 두 번째 설치된 소청도 등대

소청도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곳은 남단 해안가 구릉 위(해발 83m)에 자리 잡은 소청도 등대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설치된 이 등대는 중국 산둥반도와 랴오닝성 다롄을 오가는 선박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원래 일제강점기인 1908년 세워졌지만, 수년 전 자리를 살짝 옮겨 새로 건축됐다.
사실 소청도에 대중교통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고민에 빠졌다. 휴대가 가능한 전동 킥보드를 한 대 사서 갈까 생각했는데, 현지에 도착해보니 이것이 오산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곳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파른 데다 길이 벼랑 끝에 걸려 있어 자칫 잘못하면 사고로 이어지기에 십상이었다. 그 길을 직접 보니 진땀이 흐를 정도로 경사가 가팔랐다. 길을 올라가려면 시동을 걸어 힘껏 올라가야 하는데, 올라서면 급커브 길인 곳이 많았다. 길 바깥쪽은 낭떠러지였다.



◇ 넉넉한 교통 인심

인천에서 운항하는 쾌속선은 제일 먼저 소청도를 들른다. 대청도까지는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소청도는 '등대 스탬프투어'를 하는 사람들이 잠시 내리곤 한다.
국립등대박물관에서 진행하는 등대 스탬프투어는 전국 등대 15곳을 둘러보고 박물관에서 발행한 '등대 여권'에 스탬프를 찍는 것이다. 인천 지역의 경우 팔미도와 소청도가 대상지다. 등대 스탬프 투어를 하는 사람들은 오전 배로 소청도에 내려 등대만 방문한 뒤 오후 배를 타고 곧바로 나가기도 한다.
민박집에서 픽업 나온 더블캡 트럭을 타고 가는 도중 헉헉거리며 비탈길을 올라가는 커플을 만났다. 민박집 주인은 차창을 내리고 행선지를 물었다. 등대 스탬프를 찍으러 간다는 말에 운전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 문을 열었다. 소청도에 여행자를 위한 대중교통이 없다 보니 생긴 하나의 문화다.
소청도에서는 최근 '섬마을 주민 행복버스'라는 스티커를 붙인 승합차 한 대가 운영되고 있다. 전화로 행복 버스를 불러 이용료 100원을 내면 이용할 수 있는 공공형 콜 버스다. 그러나 이 차량은 주민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 여행자들은 이용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교통 인심은 후하다.
민박집 주인은 "소청도 등대까지 가는 길이 만만치가 않은데, 오르막 구간이라도 태워 주겠다"고 말했다. 여성은 트럭 좌석에 끼어 앉았고, 남성은 뒤쪽 짐칸에 타야 했다. 그래도 그것이 어딘가. 오르막길을 다 올라간 뒤, 두 사람을 내려 줬다. 이들은 신이 나서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고 등대로 향했다.



◇ '또 다른 등대' 분바위

요즘 대청도와 소청도를 뜨게 하는 또 다른 것은 천연기념물 제508호로 지정된 분바위와 스트로마톨라이트 지역이다.
분바위는 소청도 동쪽 끝 해변에 있는 하얗게 분을 바른 것처럼 빛나는 바위 군락이다. 이곳에서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발견돼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약 35억년 전 남조류에 의해 만들어진 화석이다. 현지 주민들은 '게껍질 바위'라고도 부른다.
소청도 분바위는 흰색 석회암이 높은 압력을 받아 대리암으로 변한 곳으로, 마치 분을 발라놓은 것처럼 하얗게 보여서 주민들은 그렇게 부른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이곳에 작업장을 차려놓고 대리석을 빼돌리기도 했다.
분바위는 한밤중에도 달빛을 받으면 하얗게 빛나 소청도 등대만큼 잘 보인다고 한다. 주변이 잘 정비돼 있어 꼭 한 번 가볼 만하다.
주민들은 소청도가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되면 섬이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가지질공원은 특정 구역의 지질이 지구과학적으로 중요하고 경관이 수려한 경우 교육·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환경부가 인증해 보전하는 지역이다. 인천시는 지난해 말 환경부에 백령·대청·소청도 국가지질공원 인증을 신청했다.
배가 들어올 때마다 노진호 씨 등 지질공원 해설사 2명은 부두로 나가 여행객을 기다린다. 해설 예약을 하지 않은 여행자에게도 분바위 등 지질공원의 가치에 관해 설명한다.



◇ 소청도 기뢰 폭발 사고

소청도 사람들을 무뚝뚝하게 만든 것이 있다. 일제가 패망한 뒤 이곳에서는 온 섬을 떠들썩하게 한 재앙이 발생했다. 바로 기뢰 폭발 사건이다.
1946년 10월 일제가 태평양전쟁 중에 설치한 기뢰들이 소청도 해안가로 밀려왔다. 이 중 두 기가 해안가에 남았는데 주민들이 회의를 통해 기뢰에서 유황을 빼내 연료로 쓰자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것이 불행의 시초였다. 기뢰 하나는 해체에 성공했으나 나머지 하나를 해체하는 도중 폭발해 무려 59명의 주민이 숨지는 사고가 난 것이다. 마을이 쑥대밭이 된 것은 불문가지다.
소청도는 풍랑이 심해 예로부터 숱하게 많은 배가 가라앉은 곳이기도 하다. 1952년에는 해상 돌풍으로 배 8척이 가라앉아 마을 사람 16명이 한꺼번에 실종되기도 했다.
이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온 사람들의 무뚝뚝함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길을 가다가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차에 쉽게 태워 주는 것을 보면 이들의 무뚝뚝함 속에 따스함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모든 어패류가 자연산

소청도에서 나는 홍합은 모두 자연산이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 말까지 홍합을 채취하고 그 이외 기간에는 잡지 않는다.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서다. 모두가 자연산이라, 바다에서 보물을 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청도와 마찬가지로 소청도도 홍어의 주산지였다. 그러나 대청도에서 홍어잡이를 계속해온 데 비해 이곳 소청도에서는 인력난으로 지난 20년 가까이 홍어를 잡지 않았다고 한다.
소청도에는 편의시설이 거의 없다. 생활필수품을 파는 점포가 한군데 있지만 조업 기간에는 문을 닫는다. 식당과 카페도 없다. 소청도를 찾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민박집에 주문해 먹는 밥은 상상외로 맛있다. 재료가 신선하기 때문이다. 주메뉴는 제철 생선을 재료로 한 매운탕이다.
머물렀던 민박집 식탁에는 매운탕과 함께 '풀가사리'라는 해초류가 올랐다. 풀가사리를 입안에 넣자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상큼하고, 바다 냄새가 입안 가득 퍼졌다.

◇ 1학교 1학생 1교사

이 섬에는 대청초등학교 소청분교가 있다. 유일한 재학생은 대청면사무소 소청 출장소 박순철 소장의 아들 한결 군이다. 학생이 한 명이기 때문에 교사도 한 명이다. 교사와 학생은 1년 내내 같이 수업하며 울고 웃어야 한다.



소박한 학교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교실 벽면에 '장래 희망이 축구선수'라는 글이 붙어 있다. 5학년인 한결이의 소원이다.
그러나 함께 공을 찰 친구들이 없다. 가끔 선생님과 함께 공차기놀이를 하는 것이 유일한 낙(樂)이다. 한결이가 공격수를 하고, 선생님이 수문장이다.
섬에 있는 유일한 인조잔디 구장이라 해병대 병사들이 자주 와서 공을 차지만 한결이를 끼워주지는 않는다.
박 소장은 한결 군의 전학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또래 친구 한 명도 없이 학교에 다니는 아들에게 여간 미안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결이가 전학을 간다면 소청분교는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친 뒤 자동으로 폐교된다. 현실은 드라마 '섬마을 선생님'처럼 달콤하고 아름답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polpor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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