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1953년 낙태죄가 도입된 지 66년 만이고, 2012년 재판관 의견 4대 4로 합헌 결정을 내린 지 7년 만이다. 헌재는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낙태죄가 7년 만에 합헌에서 헌법불합치로 바뀐 것은 실제 이 법으로 인한 처벌이 거의 없어 법 조항이 사문화한 데다 산모의 건강권을 우선해야 한다는 여론의 변화를 반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헌재의 이번 결정에 따라 정부와 입법부는 내년 말까지 헌재 선고의 취지를 존중해 정교한 법 개정 작업에 나서야 한다. 해당 형법 조문을 삭제하거나 개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자보건법 개정안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정해진 기간 내에 법을 고친다고 해서 그동안 낙태죄를 둘러싸고 빚어진 논란이 모두 사그라들 것 같지는 않다. 낙태죄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절박한 목소리가 현실적이고 이유 있었던 것처럼 낙태죄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사람들도 충분히 진실되고, 나름의 타당한 이유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헌재결정에 따른 후속입법이 낙태 만연이나 생명경시 등의 부작용을 낳지 않도록 하려면 그동안 낙태죄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종교계 등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낙태를 반대하는 이들은 낙태가 여성의 자기결정권 문제이기 이전에 태아의 생명권 문제라고 지적한다. 태아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만 않았을 뿐 분명한 생명을 가진 존재인데, 이를 임신부의 삶에 방해된다고 하여 임의로 제거해버리는 것은 야만적인 행태라는 것이다.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더 우선한다고 판단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명권'에 대한 주장이 틀렸다는 의미는 아니다. 낙태죄를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로 결정한 것도 낙태죄 규정을 곧바로 폐지해 낙태를 전면 허용할 수는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낙태를 무조건 처벌하는 것도 헌법에 맞지 않지만 사회가 아무런 제약이나 의식 없이 낙태를 하도록 두어서도 안 된다. 미혼모들이 낙태와 관련한 상담을 할 때 아기를 낳고는 싶은데 형편이 안된다거나 남성 혹은 부모가 반대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경우도 많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성숙한 사회의 어른들이라면 이제는 낙태가 죄도 아니니 주저 없이 하라고 하기보다는 아기의 생명과 자기 삶 앞에서 갈등하는 여성의 형편을 살펴주어야 한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지 않도록 제도도 최대한 정비해야 하고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생명이나 임신부의 아픔이 덜하도록 감싸줄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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