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시민,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서 임정 100주년 함께 기리다

입력 2019-04-11 20:48  

한일 시민,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서 임정 100주년 함께 기리다
환경재단 '피스&그린보트' 승선객, 윤봉길 기념관·소녀상 등 찾아
"피해자들에 미안…슬픈 역사 반복되지 않길"



(상하이=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일인 11일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에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 오후 상하이 황푸(黃浦)구 마당로에 있는 청사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라고 적힌 현판 앞으로 젊은 한인 관광객들이 태극기를 들고 와 연신 사진을 찍었다.
국권을 침탈당해 나라 밖에서 나라의 후일을 도모해야 했던 슬픈 역사가 서린 곳이지만, 이날 만큼은 많은 사람이 방문해 활기를 띠었다.
한국과 일본 시민 각각 550명씩을 태운 환경재단의 '피스&그린보트'는 이날 오전 우쑹커우(吳淞口)항에 정박했다.
상하이 동쪽 끝자락에 자리 잡은 우쑹커우 항구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남짓 달리면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에 갈 수 있다.
상하이의 화려한 신시가지 신톈디(新天地) 안에 들어선 작고 붉은 건물이 바로 상하이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다.
한민족이 일제에 항거해 전국에서 독립 만세를 외친 3·1운동 이후 한 달이 조금 지난 1919년 4월 11일 상하이에는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항일 독립운동의 상징이자 본거지인 이곳 청사는 임시정부 수립 이후 1926년부터 1932년까지 가장 오래 사용된 임시정부 건물이다. 첫 임시정부 청사 자리에는 현재 의류브랜드 H&M 건물이 들어섰다.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는 1988년부터 우리 정부와 상하이시가 공동으로 진행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발굴 조사에서 건물의 존재가 확인됐고, 2년간의 복원 작업을 거쳐 1993년 4월 일반에 공개됐다.
3층짜리 벽돌 건물인 이곳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집무실과 임정 요인의 사무실, 부엌 등이 재현돼있다.
관람객들은 청사 복도가 좁고 가파른 탓에 시종일관 조심스럽게 움직이면서도 임시정부의 역사가 담긴 자료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못했다.


임시정부 방문에 앞서 한일 시민들은 윤봉길(尹奉吉·1908∼1932)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 현장인 상하이 루쉰공원(옛 훙커우 공원)과 중국의 첫 소녀상이 설치된 상하이사범대학을 찾았다.
시추안(四川)로 인근에 자리 잡은 루쉰공원 정문에서 10분 남짓 걸어가면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주 무대였던 중국에서 한국인 독립운동가만을 기리는 기념관이 운영 중인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윤 의사의 호를 따라 '매헌'(梅軒)이라고 써 붙인 기념관에는 윤 의사의 생애와 그의 의거, 독립을 향한 의지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깔끔하게 정돈돼 현지인들이 여유를 즐기는 공원의 한복판에 있지만, 아쉽게도 평상시 윤 의사 기념관을 찾는 한국인들은 많지 않다.
중국에서의 일정을 안내한 가이드는 "지금은 매화가 다 졌지만, 한창 때는 윤 의사의 호를 기려 심은 매화나무가 흐드러지게 핀다"고 소개하면서도 "최근에는 임시정부 100주년이라 한국인 관광객이 조금 늘었지만, 평소 때는 그리 많이 찾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한일 시민은 상하이사범대 원위안(文苑)루 앞 교정에 한중 위안부 피해자 '평화의 소녀상'도 방문했다.
중국의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한국 주재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동상과 똑같은 소녀상 옆에 나란히 앉아 있다. 이들 소녀상 옆에는 한국에서처럼 빈 의자가 놓여있다.
한국의 소녀상과 마찬가지로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발뒤꿈치를 살짝 들고 있다. 주먹은 이들의 의지를 의미하고, 살짝 들린 발뒤꿈치는 세상 어디에도 편히 발붙이지 못한 이들의 신산했던 삶을 뜻한다.
이날 소녀상 방문에는 한국의 소녀상을 만든 부부 조각가 김서경·김운성 작가도 함께했다.
김서경 작가는 "이곳 한중 평화의 소녀상은 2016년에 세워졌다"며 "어느 날 중국분 2명이 찾아와 중국의 피해자도 기리고 싶다고 해서 이 소녀상을 함께 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할머니들이 20여년간 진행한 수요집회가 있었기에 소녀상이 생겼다"며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피해를 알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후손들이 똑같은 일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상하이 곳곳에 남은 아픈 역사의 현장을 방문한 이들은 피해자들의 슬픔에 공감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다.
낮에는 농장을 일구고 저녁에는 10대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일본인 후쿠오카 마사키 씨는 "우리는 일본에서 역사의 한 단면만을 배웠다"며 "한국과 중국의 역사를 알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후쿠오카 씨는 "성노예로 끌려가신 할머니들의 역사가 담긴 사료관에서는 너무 슬퍼 눈물을 흘렸다"며 "피해자들께 미안함을 느낀다"고 감상을 전했다.
'피스&그린보트'는 국내 최초의 민간 환경전문 공익재단인 환경재단과 일본 정부의 역사 교과서 검열에 분노한 학생들이 모여 설립한 일본 비정부기구(NGO) 피스보트(Peace Boat)가 2005년부터 함께 진행한 크루즈 프로그램이다.
'환경과 평화, 우리가 만드는 새로운 100년'을 주제로 삼은 올해는 13회째 출항으로,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한국과 일본인이 함께 임시정부가 세워진 상하이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 폭탄이 투하된 일본 나가사키, 아름다운 자연 속 역사적 비극을 겪은 한국 제주를 차례로 방문한다.
so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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