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 개편 '폭풍전야'…주류업계 눈치작전에 소외된 소비자

입력 2019-04-14 06:05  

주세 개편 '폭풍전야'…주류업계 눈치작전에 소외된 소비자
주종별 입장조율 난항…업계·소매점은 이윤 극대화 골몰


(서울=연합뉴스) 조성흠 기자 = "소주와 맥주 가격 변동은 없을 것이다", "원가 인상 요인이 오래 쌓여왔다"
주세 과세체계 개편안이 이달 내 윤곽을 드러낼 예정인 가운데 주류 가격을 둘러싼 업계의 눈치작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업체별, 주종별로 복잡하게 엇갈린 이해관계가 어떻게 조율될지 불투명한 전망 속에서 업계만 이익을 챙기고 소비자는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 엇갈리는 득실…"이러다 때 놓칠라" 위기감도 = 14일 주류 업계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전 주종의 종량세 전환을 골자로 주세 과세체계 개편을 추진 중이다. 이달중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연구용역 결과 발표가 예정돼 있다.
현재 우리나라 주류 과세는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 방식이다. 비싼 술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한다. 반면 도입이 검토되는 종량세는 알코올과 술의용량을 기준으로 한다. '독한 술'에 더 많은 세금이 붙는다.
종량세 전환 시 국산 맥주와 수제 맥주의 세금 인하 효과가 클 것으로 업계는 예상했다.
한국수제맥주협회는 "주세 개편 시 수제 맥주도 4캔 1만원 행사가 가능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기대했다.
수입 맥주의 경우 주로 4캔 1만원 행사를 하는 고급 제품은 세금 인하 효과가 있어 현재 할인행사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저가 수입 맥주는 세금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소주는 정부가 "가격 변동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으나, 알코올 양에 비해 가격이 싼 소주가 종가세로 누렸던 세제상 이점이 종량세에서는 없어질 전망이다.
고급 주류로서 세금 부담이 컸던 와인과 위스키도 종량세 전환 시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종 별로 입장이 다른 가운데 조세연구원이 맥주·증류주·기타 주류 등 3개 분과로 나눠 진행 중인 논의도 맥주를 제외하면 지지부진한 형편이다.
일각에서는 종량세로 전환하면서 맥주, 소주 모두 인상 요인이 없게 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애초에 모순이라는 의견이 있다. 설령 그런 방침을 유지하더라도 세수 감소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논의가 본격화하다 무산됐던 지난해 상황이 재연될 수도 있다"며 "의견이 통일되는 맥주부터라도 종량세 전환을 서두르자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 "세금 내려도 가격 못 내려"…업계·소매점 눈치작전 = 주세 과세체계 개편이 가시화되면서 업체들은 계산에 바빠졌다. 세금이 내리면 내리는 대로 이익을 극대화하고, 오르면 오르는 대로 부담은 줄이는 게 목표다.
맥주 시장 1위인 오비맥주는 최근 주요 제품 출고가를 평균 5.3% 올렸다. 세금 인하가 예상되는 시점에 선제적 가격인상으로 운신의 폭을 넓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금이 실제로 인하된다면 가격을 올리기가 어려워진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예전 같았으면 가격을 따라 올렸을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는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1위 업체이자 외국계 기업인 오비맥주와 달리 이들 국내 업체는 '세금 인하 전 가격 인상'에 대한 정부 당국과 여론의 부정적 시선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격 인상을 미뤘다가는 세금 인하안이 발표된 뒤 가격 인상 명분이 아예 없어질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개편안이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오비맥주가 가격을 올린 데 대해 업계가 당황스러워하는 분위기"라며 "선택의 폭이 좁은 경쟁업체들의 고민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주세 개편으로 수혜가 예상되는 위스키 업계에서도 1위 업체인 디아지오코리오가 최근 주요 제품 가격을 평균 8% 올리는 등 가격 인상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소주 업체들은 "현재로선 인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주세 개편으로 세금이 오를 경우 인상도 가능한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업체의 수 싸움 속에 소매점은 소매점대로 값 올려받기에 나섰다. 일부 식당과 주점에서는 소주 1병에 5천원을 받는 곳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점 업주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는 "소주를 5천원을 받을지, 4천500원을 받을지 고민"이라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이에 한 점주는 "어차피 머지않아 출고가가 오를 텐데 그때 5천원으로 올리면 되지 않겠냐"고 답했다.


◇ "현재 경쟁우위 활용하자" 수입 맥주 공세 '고삐' = 현행 종가세 체계에서 경쟁 우위를 누렸던 수입 맥주들은 주세 개편 전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중국 1위 맥주 업체인 설화맥주는 오는 1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슈퍼엑스'의 한국 시장 진출을 발표할 예정이다.
중국 국영 주류기업 노주노교도 18일 신제품을 한국 시장에 선보인다.
업계에서는 중국 맥주 '칭따오'가 한국에서 수입 맥주 판매량 2, 3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끄는 데 고무된 중국 주류의 한국 시장 진출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했다.
종가세 체제로 수입 맥주에 '친화적'인 우리나라의 조세체계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4년 6%에 불과했던 수입 맥주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20%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 관계자는 "저렴한 수입 맥주가 기존 종가세 체제에서 가격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며 "주세 과세체계 개편이 언제쯤 결론이 날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입 맥주 공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jos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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