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르 의원의 9·11 발언 비판하는 트윗 공격에 공화당 동조
민주 "대통령이 현역의원에 폭력 선동…미국을 더 작게 만들었다"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11 테러 영상을 짜깁기한 소셜미디어 게시물로 민주당 소속의 무슬림 여성 하원의원을 공개 저격해 미 정가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공화당과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해당 의원을 비판하는 여론이 일고 있지만, 민주당에서는 대통령이 증오와 분열을 선동하고 끔찍한 테러를 정쟁의 도구로 활용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 1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43초짜리 편집 동영상이다.
영상은 일한 오마르(37·미네소타) 하원의원이 한 행사장에서 9·11 테러와 관련해 "일부 사람들이 뭔가를 저질렀다"고 언급하는 장면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보여주면서 그 사이사이에 테러 당시 항공기가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충돌해 폭발하고 사람들이 대피하는 광경을 삽입했다.
'2001년 9월11일, 우리는 기억합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끝나는 이 영상을 트위터에 게시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게시물을 자신의 메인 트윗으로 맨 위에 고정했고, 이틀 만에 872만 명이 시청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리트윗 횟수도 8만2천 건에 이른다.
공화당과 보수 진영은 오마르 의원이 여전히 미국인들에게 큰 상처로 남아있는 9·11 테러 공격을 대단치 않게 여긴 것이라며 분노하는 분위기이다.
소말리아 난민 가정 출신으로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사상 최초로 미 연방의원에 당선된 2명의 무슬림 여성 중 한 명인 오마르는 지난 2월 유대인 로비 단체를 비난했다가 '반유대주의' 역풍을 맞고 사과한 전력이 있어 더욱 보수 진영의 타깃이 된 것으로 보인다.
14일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문제의 발언은 오마르 의원이 지난달 23일 무슬림 인권단체인 '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Cair) 행사에서 한 20분짜리 연설 중 일부다.
당시 오마르 의원은 "Cair는 일부 사람들이 뭔가를 저질렀는데, 우리(무슬림) 전체가 자유를 잃기 시작했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에 9·11 이후에 창설됐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지난 9일 초선 하원의원인 댄 크렌쇼(공화·텍사스)가 "믿을 수 없는 발언"이라며 트위터에 소개하면서 처음 대중에 알려졌다. 곧이어 폭스뉴스를 비롯한 보수 성향 매체들이 일제히 이 발언을 심층 보도해 논쟁에 불을 지폈다.
로나 맥대니얼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장은 10일 트위터에서 "일한 오마르는 반유대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반미주의자"라고 맹비난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까지 가세해 논란이 커지자 민주당도 가만있지 않았다. 특히 2020년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차기 주자들이 앞장서서 대통령을 비판하고 오마르 의원을 옹호하고 나섰다.
엘리자베스 워런(민주·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은 트위터에서 "대통령이 현역 여성의원을 상대로 폭력을 선동하고 있다"며 "역겹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난했다.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도 "오마르는 용기 있는 지도자로 트럼프의 인종주의와 분노에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를 향한 역겹고 위험한 공격을 멈춰야 한다"고 적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피트 부티지지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은 "오늘 대통령은 미국을 더 작게 만들었다"며 트럼프가 미국 사회를 분열시켰다고 비판했다.
낸시 펠로시(캘리포니아) 하원의장은 "9·11에 대한 기억은 성역이며 그에 관한 어떤 논의도 경건하게 해야 한다"며 "대통령은 9·11의 고통스러운 이미지를 정치 공세에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마르 의원 본인도 자신이 살해 위협을 받았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을 "위험한 선동"으로 규정하고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세계 각국의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나는 일한을 지지한다'(#IStandWithIlhan)는 해시태그를 사용해 오마르 의원을 옹호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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