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를 넘나든 근대 서화가들이 그린 봄(종합)

입력 2019-04-15 14:27  

전통과 현대를 넘나든 근대 서화가들이 그린 봄(종합)
국립중앙박물관, 심전 안중식 100주기 특별전
백악춘효·도원행주도·나려기완도 등 서화 약 100건 공개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심전(心田) 안중식(1861∼1919)이 1915년에 그린 등록문화재 제458호 '백악춘효'(白岳春曉)는 서울 중심부 백악산과 경복궁을 묘사한 그림이다.
가로 약 65㎝, 세로 약 200㎝인 길쭉한 화폭에 아래에서부터 차례로 해태상, 광화문, 나무와 검은색 기와지붕, 웅장한 백악산을 담았다. 투시도법을 적용해 원근감을 살리면서도, 백악산은 동양화풍으로 표현했다.
그림 제목은 '백악의 봄날 새벽'을 뜻하지만, 현존하는 작품은 각각 여름과 가을 풍경을 담아냈다. 심전이 왜 봄날을 화제(畵題)로 삼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김승익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15일 "안중식이 백악춘효를 그릴 당시 일제는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하면서 경복궁의 많은 전각을 허물고 신식 가건물과 서양식 건물을 지었다"며 "잃어버린 조선의 봄, 다가올 조선의 봄을 꿈꾸며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백악춘효는 중앙박물관이 안중식 100주기를 맞아 16일 개막하는 특별전 '근대 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에서 선보인다.
전시에는 안중식을 필두로 한 근대 서화가가 남긴 그림, 글씨, 사진, 삽화 등 작품 약 100건이 나온다. 중앙박물관뿐만 아니라 삼성미술관 리움,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보유한 안중식 걸작을 비롯해 그동안 존재만 알려진 일본 사노(佐野)시 향토박물관 소장품인 김옥균·박영효 친필 글씨가 공개된다.



서울에서 태어난 안중식은 1881년 중국 톈진으로 유학을 떠났고, 1889년 일본 교토 등지에서 머물다 1901년 귀국했다. 그는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 어진(御眞·임금 초상화) 제작에 함께 참여한 소림(小琳) 조석진과 더불어 국내 화단을 이끌었고, 이도영과 고희동을 제자로 길러냈다.
김 연구사는 "안중식은 장승업과 매우 가까운 관계였지만, 그의 호방한 화풍과는 다르게 정교하고 섬세한 필치로 꽃과 새, 동물을 그렸다"며 "중국과 일본을 수차례 오간 안중식의 작품에는 조선 전통뿐만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중국, 일본 화풍의 영향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안중식이 활발하게 활동한 시기는 모든 것이 급변한 전환기였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근대화한 자주 국가를 꿈꿨으나, 일제는 국권을 침탈했다. 한편으로는 외국 문물과 문화가 다양한 경로로 유입됐다.
전시도 전통과 현대 혹은 동양과 서양을 오간 근대 서화가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안중식 사후 한국미술사에서 기성세대가 퇴장하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는 과정도 다룬다.



근대 서화의 복잡하고 다채로운 면모는 안중식이 1915년에 그린 '도원행주도'(桃源行舟圖)에서 확인한다. 화면에 산세를 중첩해 배치하고, 녹색과 분홍색으로 화려하게 채색해 복사꽃이 만발한 무릉도원을 나타냈다. 동양화 같기도 하고, 서양화 느낌도 드는 작품이다.
이도영이 1930년 서화협회전람회에 출품한 병풍 '나려기완도'(羅麗器玩圖)도 흥미롭다. 고대 토기에 바나나를 넣어 그리는가 하면, 고려시대 불교 용구인 금강령과 유리 접시를 같은 화폭에 묘사했다.
전시는 편안한 미술품 감상에 초점을 맞췄으며, 모두 6부로 나뉜다. 1860년대 전후에 태어난 화가를 소개하는 제1부 '서화의 신세대'로 시작해 서화가들이 수용한 인쇄매체를 선보이는 제2부 '계몽의 붓', 1910년대 서화계 흐름을 들여다보는 제3부 '저항과 은둔의 서화'와 제4부 '서화가들의 결집과 확산'으로 이어진다.
제5부 '거장과 신예'에서는 안중식과 그의 화풍을 계승한 신예를 비교하고, 제6부 '새로운 도전과 모색'은 1920년대 초반 서화협회전람회와 조선미술전람회가 개최되면서 변하는 화단 양상을 분석한다.
전시 마지막 부분에는 안중식이 쓴 '양양화관'(洋洋畵館)이라는 글씨를 두고, 그 옆에 김환기와 김용준이 해방 후에 완성한 그림을 걸었다. 근대 이후 많은 화가가 전통을 살리면서도 서양 화풍과 화법을 어떻게 접목할지 고민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100년 전 예술가들은 빼앗긴 들에 봄이 올지 고민했을 것"이라며 "혼돈의 시대에 작가들이 새로운 창조력으로 사회적 아픔, 저항정신, 밝은 미래를 어떻게 표현했는지 알아볼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물관은 특별전과 연계해 6월 1일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와 함께 20세기 초반 전환기 한국 서화를 주제로 하는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전시는 6월 2일까지. 관람료는 성인 6천원, 어린이와 청소년 4천원.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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