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서 야권후보 크게 앞섰지만 재선 예단 힘들어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인도네시아 차기 대선을 사흘 앞두고 조코 위도도(일명 조코위)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순례에 나서 눈길을 끈다.
15일 일간 콤파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조코위 대통령은 지난 13일 공식선거운동을 종료하고 이튿날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 도착했다.
그는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난 뒤 이슬람 최대성지인 메카로 움라(소순례)를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네시아 2억6천만 인구의 87%는 이슬람을 믿는다.
조코위 대통령 역시 독실한 무슬림이지만 종교적으로 중도적 성향을 보여온 까닭에 근본주의 성향의 무슬림 과격파들은 그가 공산주의자나 무신론자라는 등의 가짜뉴스를 퍼뜨려 왔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런 유언비어를 일축하고 무슬림 유권자들의 지지를 공고히 하려고 조코위 대통령이 순례에 나섰다고 해석했다.
국립 인도네시아학술원(LIPI) 소속 정치 분석가 시티 주로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의 사우디 방문을 선거와 관련된 정치적 활동이 아니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이번 선거에서 그는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과 독실함을 명확히 하려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선 종교적 정체성이 유권자의 선택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에 조코위 대통령은 핵심 지지층인 진보 진영의 반발에도 보수 성향 이슬람 성직자인 마룹 아민 울레마협의회(MUI) 의장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는 등 움직임을 보여왔다.
그는 2014년 대선 당시에도 투표일 직전 메카를 순례했다.
현재로선 조코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최근 공개된 일련의 여론조사에서 조코위 대통령의 지지율은 49∼58%로 야권 대선후보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인도네시아운동당(그린드라당) 총재를 두 자릿수 격차로 앞섰다.
여론조사기관 차르타 폴리티카가 이달 5∼10일 전국 남녀 2천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선 응답자의 55.7%가 조코위 대통령의 재선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프라보워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다는 응답은 38.8%에 그쳤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는 부동층은 5.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의 신뢰도는 95%, 오차범위는 ±2.19%포인트다.
하지만, 야권 지지자들은 여론조사의 신뢰도와 객관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무슬림 과격파의 지지를 받는 프라보워 후보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주변에 숨기는 이른바 '샤이 프라보워'(잠재적 야권 지지층)가 상당수일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한 정부 당국자는 "여론조사를 어느 정도까지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누구도 결과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13일 오후 자카르타 시내 겔로라 붕 카르노 경기장에선 20만명의 지지자가 운집한 채 조코위 대통령의 마지막 선거유세가 진행됐다. 이 행사에는 조코위 대통령을 지지하는 가수 등 예술인 500여명이 동참해 콘서트 현장을 방불케 했다.
프라보워 후보 역시 최근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규모의 선거유세를 진행했으며, 여기에는 보수 성향 무슬림이 즐겨 입는 중동풍의 흰옷 차림 남녀가 주로 몰려 대조를 이뤘다.
프라보워 후보는 외세와 손을 잡은 부패한 엘리트가 인도네시아를 약탈하고 있다면서, 인프라 확충 사업을 비롯한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집중적으로 비판해 왔다.
조코위 대통령은 13일 마지막 대선 TV토론에서 인프라 확충과 규제 완화는 경제적 불평등과 빈곤을 해소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면서 "정무직 경력이 일천한 야권후보들이 거시경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실제, 2014년 조코위 대통령 취임 이후 인도네시아는 원자재 가격 하락 등 악재 속에서도 연간 5% 이상의 탄탄한 성장세를 보여왔다.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아 온 열악한 도로와 항만, 전력 등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확충한 것도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다만,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농민의 실질소득이 감소한 것은 조코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인도네시아 대선은 오는 17일 총선,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다.
약 1억9천만명의 유권자가 참여할 이번 선거는 하루 일정으로 진행되는 투표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투표소 주변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거의 50만명에 달하는 군경을 배치할 계획이다.
hwangc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