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규 "높이 날아오르려면 깊이 숨죽일 시간 필요하죠"

입력 2019-04-16 15:41  

진선규 "높이 날아오르려면 깊이 숨죽일 시간 필요하죠"
창작가무극 '나빌레라'서 칠순의 발레리노 연기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천만배우' 진선규(42)는 몸을 잘 쓰는 배우다. 데뷔작인 연극 '겨울공주 평강이야기'에서 대사 한 마디 없는 소년을 연기했고, 영화 '범죄도시'에선 조폭 위성락 역을, 영화 '극한직업'에선 유도 국가대표 출신 형사 역을 맡았다.
한동안 스크린을 종횡무진 누비던 그가 고향인 '무대'로 돌아왔다. 서울예술단 신작 창작가무극(뮤지컬) '나빌레라'를 통해서다. 15년 연기 인생에 1천석 규모 극장에 서기는 처음이다. 타이트한 앵글에 모든 걸 쏟아붓는 영화와 달리, 긴 호흡으로 춤추고 노래해야 한다.
1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만난 진선규는 사실 한시도 무대를 떠난 적이 없다며 수줍게 웃었다.


"'잘 돼서 돌아왔다'는 말이 어색해요. 인지도가 생긴 지 얼마 안 됐고, 지난달에도 공연했거든요. '나와 할아버지'라고 지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는 공연인데요, 예전엔 관객이 별로 없었는데 이제 관객이 많아졌어요. '티켓파워'라는 말을 처음 들어봐서 적응이 안 됩니다. 하하."
'나빌레라'는 동명 인기 웹툰을 무대화한 작품이다.
진선규가 연기할 주인공 '덕출'은 일흔을 코앞에 뒀다. 친구 장례식장에 다녀온 뒤 오래전부터 꿈꾼 발레를 하기로 결심하고, 가족 만류에도 발레단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만난 스물세살 발레리노 '이채록'은 빛나는 재능을 가졌지만 부상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인물. '덕출'은 '이채록'의 제자가 돼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을 쌓는다.
진선규는 '덕출'에게서 자신의 모습과 아버지 모습을 동시에 읽었다고 했다.
"원작에서 '덕출'의 장남이 아버지를 말려요. 발레를 취미로 배우는 거야 괜찮은데 발레단까지 들어가겠다니? 다치지나 않을까 당연히 걱정되죠. 제 아버지가 69세로 '덕출'과 딱 동갑이신데, 저라도 아버지가 발레 배운다고 하셨으면 헛웃음 나왔을 거예요. 그런데요, 저는 '덕출'도 이해가 돼요. 큰돈 버는 일이 아니어도 너무나 해보고 싶고 꿈꾸는 그 마음이요."


배역에 스며든 덕분일까, 돈 되는 일과 거리가 멀었던 지난날 때문일까, 진선규는 '덕출'과 자신이 참 닮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가장 심장에 남는 대사로 "더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선 깊이 숨죽일 시간이 필요해, 마치 '그랑 플리에'처럼"을 꼽았다. '그랑 플리에'는 무릎을 깊숙이 굽히는 발레 동작이다. 이 대사를 소개할 때 진선규의 선한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연습 때 감정을 유지하느라 갑자기 울컥했다"며 황급히 손부채질을 했다.
"제가 하고 싶은 말과 '덕출'이 전하는 메시지가 참 비슷해요. 즐겁게 열정적으로 일하다 보면 언젠간 꿈을 이룰 거라는 말이요. 제가 지금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너는 잘됐으니까'가 될 수 있어서 조심스러워요. 하지만 제가 걸어온 과정이 정말 그랬거든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그것만큼 행복한 게 없었어요. 그런 면에서 '나빌레라'는 희망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해요."
40대 초반인 그가 칠십 노인을 연기하는 게 어렵진 않았을까.
"'노인 연기'를 너무 생각하면 5분도 안 돼 들통나요. 흉내 내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덕출'이 지닌 삶의 가치관과 역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그게 제가 연기하는 방식이에요. 리얼리티를 살리자면 특수분장을 해야겠죠. 하지만 제가 설 곳은 카메라 앞이 아니잖아요. 어차피 관객은 제가 할아버지가 아니라는 걸 알아요. 관객이 전반적인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도록 정서를 표현하는 데 집중했어요."
'나빌레라'는 탄탄한 원작에서 나오는 재미도 있지만, 핵심은 발레다. 진선규는 발레를 배워본 적 있냐는 질문에 "학교 다닐 때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은 배웠지만 발레는 난생처음"이라며 "최대한 선을 찾아가고 있다"고 겸손하게 답했다.


노래에 대한 부담이 없냐는 질문에는 "저는 노래를 못하는 배우"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진선규는 '나빌레라'에 나올 23곡 가운데 솔로 파트만 4∼5곡을 맡고, 다른 배우와 함께 부를 노래도 7∼8곡이나 된다.
그는 "사실 노래가 제일 걱정이다. 뮤지컬을 전문적으로 하지 않고 연극을 주로 하지 않았느냐"며 "혹시나 음 이탈을 하지나 않을까 죽어라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도 무대에 서면 떨린다는 진선규. 그에게 어떤 미래를 꿈꾸냐고 물었다.
"저는 무대가 늘 떨려요. 영화는 실수하면 '죄송합니다' 하고 다시 찍지만, 무대에 올라가면 모든 걸 다 책임져야 하거든요. 그럼에도 제 꿈은 좋은 배우입니다. 좋은 배우가 어떤 것인지는 잘 몰라요. 저 멀리 있는 그 길을 향해 가는 과정이 지금이지 않을까 합니다."
진선규는 올해 두 편 영화를 더 선보인다. 서예지와 호흡을 맞춘 공포영화 '암전', '범죄도시' 강윤성 감독 신작 '롱리브더킹' 등이 대기 중이다.
바빠져서 기쁘지만 마음 쓰이는 일도 있다. 올해 7살, 4살 된 아이들과 보낼 시간이 줄어들어서다. "이제 아이들이 등에 올라타기 시작해서요, 들어주고 안아줘야 해요. 비타민도 챙겨 먹으면서 건강 잘 챙기고, 일 끝나면 얼른 아이들과 보내야죠."
'나빌레라'는 오는 5월 1~12일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cla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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