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한류 1번지' 신오쿠보서 욱일기 들고 혐한 발언 쏟아내
극우 일본제일당, 지방선거 12명 출마…"한국과 싸우려고 입후보"
'헤이트스피치 억제법' 처벌규정 없어…'혐한반대' 시민들 적극 비판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선거의 자유'의 이름을 빌려 여기서 선언한다. 일본은 한국과 단교해야 한다."
지난 14일 주말을 맞아 행인들로 북적이는 일본 도쿄(東京)의 코리아타운 신오쿠보(新大久保)의 한복판에서 욱일기를 치켜든 한 남성의 입에서 거친 혐한(嫌韓) 발언이 튀어나왔다.
한국 식당과 술집, 화장품 가게 등이 늘어선 신오쿠보 번화가는 일본 내 한류 열풍의 상징으로, 한류 팬들이 대거 몰린다.
이 남성은 일본 '후반기 통일지방선거'의 신주쿠 구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한 '일본제일당'의 후보다.
일본제일당은 혐한 단체 '재일(재일 한인)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在特會)'의 전 회장인 사쿠라이 마코토(櫻井誠)가 '당수'인 극우 정당이다.
일본의 기초의회 의원을 뽑는 지방선거의 선거전이 일본 극우들의 혐한시위 장(場)으로 이용되고 있다.
극우 인사들이 후보로 출마해 선거 유세를 빙자해 실컷 혐한 등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극우들은 신주쿠 구의회 선거의 이런 혐한 발언을 촬영해 인터넷에 퍼트리며 적극 '홍보'까지 하고 있다.
동영상에 따르면 이 남성 후보는 신오쿠보의 쓰레기 문제로 인해 쥐가 출몰한다는 얘기를 꺼내더니 갑작스럽게 한국과의 단교를 선언했다.
유세의 사회자는 해당 남성 후보를 "한국의 반일 모드에 대해 항의의 할 수 있는 정치가"라고 소개했고, 지지 연설에 나선 여성은 한국 음식점을 배경으로 한국에 대해 "'천황폐하'(일왕)를 모독하고 일본에 대해 불평하는 나라"라고 외쳤다.
또 다른 동영상에는 이 후보가 차를 타고 확성기로 혐한 발언을 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 후보는 자신을 '한국과 싸우는 게 가능한 정치인'이라고 소개하며 "한국과 기죽지 않고 싸우기 위해 입후보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17일에는 고쿠분지(國分寺市)에서 유세하던 극우 인사들과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 사이에서 말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극우 인사들은 "선거의 자유를 방해하지 말라"며 북한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일본제일당은 오는 21일 투개표가 실시돼 기초 지자체의 의회 의원 등을 뽑는 이번 '하반기 통일지방선거'에서 모두 12명의 후보를 냈다.
지난 7일 투개표된 광역 자지단체 대상 '상반기 통일지방 선거'에서는 가나가와(神奈川), 교토(京都), 후쿠오카(福岡)에서 5명의 후보를 냈지만 443~1천185표의 저조한 득표로 모두 낙선했다.
극우 후보들의 헤이트 스피치는 이들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에 의해 SNS에서 비판적 댓글이 달린 채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헤이트 의원은 필요 없다'는 해시태그를 달고 유세 중 헤이트 스피치 사례나 후보들의 과거 헤이트 스피치를 공유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헤이트 스피치가 횡행하고 있는 것은 선거를 앞두고 지난달 중순 일본 정부가 발표한 규제 방침이 그다지 먹혀들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 법무성이 각 지역 법무국에 헤이트 스피치에 '적절히 판단해 대응하라'고 지시했었다.
일본에서는 2016년 헤이트 스피치 억제법(외국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향한 대응 추진에 관한 법)이 시행됐지만, 이 법이 선언적인 내용만 담은 채 처벌 규정을 두지 않아 헤이트 스피치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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