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자극 피하면서도 빅딜·속도조절론 고수할 듯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미국 측은 북한의 '신형 전술 유도무기의 사격시험'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협상대표 교체 요구에 대해 자극적 맞대응을 자제하면서도 그 배경과 의도를 예의주시하며 향배에 촉각을 세웠다.
북한은 18일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을 하는 형식으로 "폼페이오가 아닌 우리와의 의사소통이 보다 원만하고 원숙한 인물이 우리의 대화상대로 나서기 바랄 뿐"이라며 공개적으로 폼페이오 장관을' 비토'했다. 그 몇 시간 전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형 전술 유도무기의 사격시험을 지도했다는 조선중앙통신 보도가 나왔다.
같은 날 연달아 불거진 이들 북한발(發) '연타'는 최근 북미가 상대방의 양보를 요구하며 서로 공을 넘기는 등 교착국면이 장기화할 조짐이 나타나는 와중에 나온 것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향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북한 "폼페이오만 끼어들면 일 꼬이고…다른 인물 나와라" / 연합뉴스 (Yonhapnews)
김 위원장이 '연말 시한'을 제시하며 미국의 입장 변화를 촉구한 데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빅딜'을 고수, 3차 북미 정상회담에 관한 속도조절론으로 응수한 상황에서다. 판을 깨지는 않되 흔들어댐으로써 협상력을 높이려는 차원으로 보인다.
AP통신은 18일(현지시간) "두 가지 모두 협상 교착 상태에 대한 북한의 불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두 가지가 서로 직접 연결된 건 아니지만, 북한 정권이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건 분명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단 차분한 대응에 나섰다.
국무부는 북한의 폼페이오 장관 배제 요구에 대해 "미국은 여전히 북한과 건설적 협상에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백악관도 전날 밤 신형 전술 유도무기의 사격시험 관련 뉴스에 "보도를 인지하고 있으며 추가로 언급할 것은 없다"고만 했다고 미언론들이 보도했다.
북한에 대한 대화의 문을 열어놓겠다는 원칙론에는 변화가 없다는 걸 확인하면서 북한을 자극할 직접적 대응을 자제한 채 신중론을 견지한 차원으로 보인다. 앞서 '하노이 노딜' 이후인 지난 3월 북한의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복구 움직임이 감지됐을 당시 미국이 대북 압박 스탠스를 유지하면서도 신중한 반응을 보였던 기조와도 맥이 닿아 보인다.
그러나 미국측이 북한의 '압박'에 빅딜론과 속도조절론 기조에서 당장 후퇴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양측간 긴장 상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 언론들은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15일 '연말보다 빨리'라며 북한의 조속한 비핵화 등을 압박한 발언과 지난 9일 상원 청문회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독재자' 표현에 동의한다고 언급한 것이 '방아쇠'가 됐을 것으로 내다봤다.
북한이 폼페이오 장관에 대한 협상 배제를 요구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김 위원장과의 관계가 좋다며 분리 대응한 것은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거래'를 희망한다는 뜻을 피력한 차원으로도 보인다는 분석이 워싱턴 외교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는 폼페이오를 누구로 교체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이 트럼프와 직접 대화하길 원한다는 것"이라는 전문가 분석을 소개하며 북한이 '하노이 노딜' 이후 지렛대를 다시 확보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매우 난감할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고 CNN방송은 내다봤다.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신의 '복심'이자 협상 총괄역을 해온 폼페이오 장관을 내칠 경우 '나약함'으로 비칠 수 있고, 그렇다고 해서 폼페이오 장관을 계속 협상 총괄역으로 둘 경우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 대화하는데 동의할 것이라는 걸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폼페이오 장관을 공개적으로 표적으로 삼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폼페이오 장관과 '슈퍼 매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을 책임자로 지목한 바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해 7월 6∼7일 3차 방북이 북한의 종전선언 주장과 미국의 핵신고 요구 간 대치로 '빈손'으로 끝난 뒤 북한으로부터 "강도적인(gangster-like) 비핵화 요구"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여기에 신형 전술 유도무기의 사격시험도 미국으로선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복구 움직임 감지 당시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재개한다면 매우 실망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 외신들은 북한이 '하노이 노딜' 이후 무기 실험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자신이 자랑해온 대북 외교 치적 중 하나인 핵·미사일 실험 중단이 원점으로 돌아갈 경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번 시험이 탄도미사일 시험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게 미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방부의 한 당국자도 "탄도미사일 실험 가능성은 배제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미언론들이 보도했다.
그럼에도 이번 실험은 북한 주민에게 무기 개발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이를 두고 북한이 제재 해제를 관철하기 위해 도발적 행동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미 국익연구소(CNI)의 해리 카지아니스 국방연구소장은 "북한은 이번 실험을 통해 김정은이 실험을 중단하겠다고 한 무기는 핵무기와 미국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지, 모든 무기 실험을 중단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 준 셈"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이달 하순 북러 정상회담 개최가 확정되면서 미국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미국과의 교착 국면 때마다 '혈맹'인 중국과 밀착해온 북한이 이번에는 '러시아 뒷배'를 과시하며 협상력 강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여서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의 17∼18일 방러도 북러 정상회담에 대한 대응 차원이 적지 않아 보인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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