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발생 전 수차례 이상행동에도 아무 조처 없어…'문책론' 제기
"법·제도 미비 문제…책임 만큼 권한 줘야"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최근 경남 진주에서 발생한 아파트 방화·흉기 난동 사건의 피의자가 과거에도 수차례 이상행동을 보였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치안 당국의 대응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범인 안인득(42)의 이상행동이 수차례 신고됐음에도 범행을 막지 못한 경찰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무작정 책임을 따지기에 앞서 우범자 대처 시스템 등 제도적 미비점을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진주 사건과 관련하여 출동 경찰관에 대한 문책을 중단할 것을 청원합니다'라는 청원 글이 올라왔다.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피의자 안인득 실명·얼굴 공개/ 연합뉴스 (Yonhapnews)
해당 글 작성자는 "경남 진주에서 벌어진 방화 살인 사건을 보고 큰 충격과 비통함을 느꼈다"며 "그 분노의 화살이 경찰에게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청원을 쓴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진주 방화 살인 사건은 출동한 경찰관 개인의 실수나 태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법 제도의 부재와 땅에 떨어진 경찰관의 권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출동한 경찰관이 조현병 환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며 "그 사람을 체포하거나 강하게 제지하다가 운이 나쁘면 법적인 분쟁에 휘말리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인득은 조현병을 앓았으며 사건 발생 수개월 전부터 오물투척 등 이상행동으로 주민 신고가 잦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경찰이 안인득의 정신병력을 확인해 미리 조처했다면 이 같은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진주 '계획형 방화·살인 사건'에 초기 부실한 대처로 예견된 사건을 막지 못한 경찰들 및 관련자들의 엄중한 수사를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비롯해 경찰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다양한 글이 올라왔다.
수동적인 경찰 조직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는 "경찰의 핵심 기능 중 하나가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라며 "과거에 오물투척이라든지 문제가 있는 행동이 계속 이어졌다면 112 신고 사건의 표면만을 살피지 말고 이상행동의 근본적 원인을 찾아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비록 법이나 제도가 뒷받침돼 있지 않았더라도 조직 몰입도가 높은 경찰관이라면 사전에 이상 징후를 읽어내고 추적해 범죄를 예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경찰 활동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지난 18일 공개석상에서 경찰 대응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경찰은 그런 참사를 미리 막을 수는 없었는가 등 돌이켜 봐야 할 많은 과제를 안게 됐다"며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그 결과에 합당한 조처를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반면, 좀 더 냉정하게 접근해 이번 기회에 구조적인 문제를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가 경찰 안팎에서 나온다.
현재 경찰의 사건 발생 처리 시스템으로는 정신병력 사항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경찰 출동단계에서 피신고자의 정신병력을 파악하려고 해도 정신질환자 정보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은 데다 이를 쉽게 열람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또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범죄 발생 전 개입할 수 있는 법적인 권한도 없다고 경찰관들은 하소연한다.
한 경찰관은 경찰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사람이 아닌 '법과 제도의 미비'가 근본적 문제"라며 "이 사건을 계기로 현장경찰관들이 명확하고 안정적으로 비슷한 사례에 대응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길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적었다.
또 다른 경찰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권한의 무게와 책임의 무게는 같아야 한다"며 "결과만을 가지고 판단하고 비난하면, 현장은 더욱 움츠러들 뿐"이라며 법·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는 "경찰관에 대한 문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결과론적인 이야기"라며 "근본적으로 이웃 간에 가벼운 다툼이나 시비에 공권력이 어떻게, 어느 정도 개입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경찰관들이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때 피신고자의 의료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의료기관이 범행 우려가 큰 정신질환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해 대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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