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식 정책 나열론 안 돼"…독일은 2006년부터 제조업 중심 4차 산업혁명 준비
'규제 해소·갈등 조정' 정부 역할 시험대…"정권 바뀌어도 일관성 있어야"
(서울=연합뉴스) 특별취재팀 홍지인 기자 = 2016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의 이해'라는 주제의 포럼이 열린 이후 4차 산업혁명은 일약 세계적인 화두가 됐다.
다보스포럼 개최를 이끈 클라우스 슈바프는 4차 산업혁명을 바이오산업·물리학 등과 디지털기술의 결합·융합이 자율주행·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으로 나타나는 기술혁명으로 정의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침 대통령 선거와 맞물리며 4차 산업혁명은 꺼져 가는 경제 성장 동력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물결로 주목받았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17년 11월 발표된 '4차 산업혁명 대응계획'을 필두로 정부와 민간에서 활발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렇지만 4차 산업혁명이 우리 경제에 어떻게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인지, 그에 앞서 4차 산업혁명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도 간명한 답을 찾기는 어렵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세계적으로 '미답지' 영역인 4차 산업혁명의 실체를 두고 논란이 많으며 심지어 회의론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저서 '노동의 종말'에서 정보화 사회로 인해 머지않아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미국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지금은 여전히 디지털 혁명 중"이라며 "4차 산업혁명은 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산업의 역사도 새로운 변곡점을 맞으리란 전망은 부인하기 어려운 흐름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후발 주자인 우리 입장에서는 다보스포럼 이전부터 4차 산업혁명 준비를 해온 독일의 사례가 가장 많이 참고되고 있다.
독일의 4차 산업혁명 논의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제조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 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정책 슬로건을 내걸었고 이는 이후 널리 알려진 '인더스트리 4.0' 전략으로 진화한다.
독일은 제조업 최강국답게 '스마트 공장'으로 대표되는 제조업의 4차 산업혁명 적용에 주안점을 두면서 대외적으로 성공적인 정책을 펼친 국가로 평가된다.
우리나라는 독일보다 늦었지만 정부 차원의 4차 산업혁명 대응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2017년 4차 산업혁명 대응계획을 통해 다양한 산업군의 과제를 수립,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 준비에 나섰고, 2018년 8월 관계부처에서 혁신성장 전략투자 방향을 설정했다.
이에 12개의 지능화 혁신프로젝트와 3대 기반 과제가 선정되고, 미래 자동차·드론·에너지 신산업·바이오헬스·스마트공장·스마트시티·스마트팜·핀테크 등이 이른바 8대 선도 사업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4차 산업혁명이 실현돼야 할 일선 업계에서는 정부의 잇단 대책 발표를 보는 시각이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그 단적인 예가 공유경제 시장이다. 그중에서도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불리는 모빌리티 혁신은 승차공유 산업으로 등장했는데, 2016년 40조원 수준이던 세계 승차공유 시장 규모는 2030년 약 300조원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버와 리프트 등 업체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수십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각종 규제로 발이 묶인 데다 기존 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다른 선진국보다 공유경제 산업의 개화가 늦춰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너무나 소극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다음'의 창업자로 현재 승차공유 업체 쏘카를 이끄는 이재웅 대표는 최근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향해 "공유경제, 원격진료에 대해서 '이해관계자 대타협이 우선'이라고 한 말은 너무나 비상식적"이라며 "혁신을 하겠다는 이해관계자와 혁신을 저지하는 이해관계자를 모아놓고 어떤 대타협을 기다리느냐"고 질타했다.
지금까지 정부의 4차 산업혁명 대책이 뚜렷한 방향 없이 좋은 말만 죽 나열한 이른바 '백화점식 정책'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구지선 산은경제연구소 전임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 도입을 다방면의 산업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닌 한국의 강점, 특성을 살린 산업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며 "선도 사업의 우선순위를 지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권이 바뀌면 모든 정책이 원점으로 돌아가곤 하는 국내 정치 현실이 장기적 관점이 필요한 4차 산업혁명 대응에 위험요소라는 지적도 나온다.
구 연구원은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은 2006년부터 시작된 첨단기술전략 정책에 산업과 사회의 변화를 반영해 4년마다 보완·정비를 거쳐 수립된 정책"이라며 "우리나라는 정부에 따라 새로운 정책 수립으로 지속적인 정책이 추진되지 않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ljungber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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