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의 93%가 다문화가정 출신 자녀…"어릴적부터 문화다양성 익혀"
(수원=연합뉴스) 김광호 기자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원곡초등학교.
지난 19일 점심 식사 시간 직후 교문을 들어서자 천연잔디 운동장을 가로질러 하교하는 저학년 어린이들이 재잘거리고, 깔깔대고, 신주머니를 돌리며 친구들과 뛰어다닌다. 여느 초등학교와 전혀 다름을 느낄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를 자세히 들어보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었다. 어느 학생은 중국어를, 어느 학생들은 러시아어를, 어떤 학생은 어느 나라 말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이 학교는 지난달 1일 다문화가정 자녀가 많아 교육국제혁신학교로 지정됐다.
전교생 538명 중 93%가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다. 300여명은 한국 국적을 갖고 있지 않다. 다문화가정 자녀가 아닌 일반 한국가정 자녀 학생은 36명에 불과하다.
이 학교 학생들의 출신 국가도 23개국에 달한다. 중국 출신 학생이 230여명, CIS 국가(옛 소련 연방의 일원이던 독립 국가들) 출신이 150여명으로 가장 많다.
전체 학생 가운데 상당수가 아직 한국어가 서툴다.
이같이 다양한 국가 출신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상당수 학생이 한국어가 서툴러 이 학교의 교육프로그램은 일반 초등학교와 적지 않게 다르다.
이 학교는 사실상 '5개 학교'로 운영된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한국어를 모른 채 처음 입학하거나 전학 온 학생들을 위한 '입문반', 한국어를 조금 아는 학생들을 위한 '예비학교', 어느 정도 한국어 수업을 따라올 수 있는 '특별학급'과 '일반학급', 일반학급 학생인데도 보충수업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한 '다솜반'이 있다.
각 과정은 모두 '저학년반·중학년반·고학년반'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입문반과 예비학교는 원어민교사나 이중언어 전담 강사들이 수업한다.
이 학교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소리도 이색적이다. 학생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의 한국어 한 문장에 이어 같은 내용의 중국어와 영어, 러시아가 나온다. 이 방송 소리로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린다.
주말에는 외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한국 학생과 모국어를 잊은 학생들을 위한 러시아반과 중국어반도 운영한다.
학교 곳곳에는 러시아어와 중국어가 함께 표기된 안내문이 붙어있고, 학부모들을 위한 각종 자료도 역시 여러 나라 언어로 인쇄돼 있다. 학생들이 쓰고 그린 작품 게시판에도 온통 각국 언어로 된 게시물이 붙어있다.
이 학교 관계자는 "학생이 전학을 와도 통역사가 없으면 업무 진행이 안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좋은 점도 많다고 말한다.
이 관계자는 "어릴 때부터 여러 나라 문화를 접할 기회가 된다. 학교에서 각국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어울림 축제를 하고, 모국어 동시 낭독대회도 연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 국적의 학생이 이곳에서 좋은 환경 속에 공부하다가 좋은 기억을 갖고 모국으로 돌아가면 한국을 알리는 민간 외교관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사명감을 갖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며 웃었다.
밖에서는 어떤 걱정을 하는지 몰라도 이 학교에서 지난해 학교폭력이 단 1건도 없었다는 점도 자랑했다.
안산지역에는 이같이 다문화가정 학생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학교가 적지 않다. 인근 A초교는 67.0%, B초교는 40.4%, C중학교는 54.2%가 다른 나라 국적의 학생이다. 안산지역 전체 초중고교생의 5.2%가 다문화가정 자녀이다.
안산 전체 다문화가정 학생 비율은 물론 원곡초교를 포함한 각 학교의 다문화가정 학생 비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안산지역에 다문화가정 학생이 많은 것은 반월공단 등에 산업체가 많고, 대규모 다문화 거리가 형성돼 있어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이다.
경기도교육청이 안산지역을 교육국제화특구로 지정한 가운데 다문화가정 학생이 지속해서 증가함에 따라 안산교육지원청은 지난해 원곡초교를 비롯해 원일초, 선일초 등 6개 학교를 교육국제혁신학교로 지정, 운영 중이다.
각 학생을 위한 맞춤형 교육을 하고, 세계 시민교육을 하며, 지역사회와 연대해 다문화 멘토링 사업 등 다양한 교육사업을 펼치고 있다.
원곡초교 관계자는 "다문화가정 학생이 많은 학교라고 불쌍하거나 유별나게 봐서는 안 된다. 다소 다름은 있어도 똑같은 학교다"라며 "우리 교사들은 소수인 한국 학생은 물론 소수 국가 출신 학생 단 1명이라도 소외되지 않도록 보살피고, 점차 다가오는 다문화 국가 시대에 맞는 교육모델 학교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kw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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