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걸음 뗀 5G, 요란한 지각 변동에 각국 치열한 '전면전'

입력 2019-04-21 09:09  

첫걸음 뗀 5G, 요란한 지각 변동에 각국 치열한 '전면전'
인텔 사업 철수 선언한 반면 퀄컴은 독보적 위상 강화
미국은 화웨이 견제, 중국은 에릭슨 조사 나서…"5G, 새로운 군비경쟁"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 초고속과 초저지연(超低遲延)을 내세운 5세대 이동통신(5G) 시장이 출발 초기부터 크게 요동치고 있다.
이달 초 한국과 미국에서 첫 서비스를 개시하며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이지만 인텔이 5G 통신 모뎀칩 사업 철수를 선언하는 등 벌써 산업계의 지형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이런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직접 나서 "5G 경쟁에서 미국이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자국 업계를 독려하는 한편 동맹국을 향해서는 통신장비 업체 1위 화웨이 제품을 보이콧하라고 압박하는 중이다.

◇ 퀄컴, 애플과 합의로 5G 통신칩 시장서 입지 굳혀
21일 외신에 따르면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강자 인텔은 5G 스마트폰용 모뎀칩 사업을 접기로 했다. 인텔은 다만 다른 기기·플랫폼과 관련한 5G 사업은 계속하겠다고 덧붙였다.
애플과 퀄컴이 통신칩 로열티를 둘러싼 천문학적인 소송을 접고 통신칩 거래를 재개하기로 합의한 직후였다. 통신칩 시장에서 퀄컴의 라이벌인 인텔이 포기를 선언한 셈이다.
5G 통신칩 시장에서 퀄컴의 남은 경쟁자로는 삼성전자와 화웨이가 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그들은 주로 자사 브랜드의 스마트폰에 들어갈 칩을 생산한다"고 보도했다.
대만의 미디어텍도 통신칩을 만들지만 주로 저가형 기기에 납품하는 제품이다.
인텔은 한때 전 세계 PC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의 80%를 장악할 만큼 CPU 시장에선 전통의 강호였다. 그러나 스마트폰용 통신칩 시장에서는 후발주자로 고전해왔다.
퀄컴을 추격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지만 배터리 수명이나 데이터 전송속도 등에서 퀄컴 제품에 밀렸다.
애플이 퀄컴과 로열티 분쟁에 나서면서 인텔의 통신칩을 쓰기 시작했지만 통신칩 사업은 작년 기준으로 인텔의 매출에서 5.4%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손실을 본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업 철수를 두고 "인텔이 마침내 통신칩과 관련해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퀄컴으로서는 애플과의 법적 분쟁을 종결하고 애플을 다시 고객으로 확보하면서 시장의 비판과 의구심 속에서도 5G 기술에 꾸준히 투자한 노력이 결실을 보게 됐다.
웨드부시 증권의 댄 아이브스 애널리스트는 애플-퀄컴의 합의 뒤 "미국에서 5G 시장은 퀄컴의 세상이고 그 외의 플레이어들은 그저 세입자일 뿐"이라며 "퀄컴의 경쟁적 위상이 크게 강화됐다"고 말했다.
애플과의 합의를 끌어낸 원동력으로는 결국 퀄컴의 기술력이 지목된다.
물론 퀄컴에게도 숙제는 남았다. 가장 까다로운 고객으로 유명한 애플의 요구에 맞춰 제때 기대에 부합하는 제품을 납품해야 한다.
퀄컴이 올해 출시한 5G칩은 자체 프로세서와 연동해 작동하도록 설계됐지만, 애플에 납품할 제품은 애플의 자체 프로세서(AP)와 연계돼야 한다.



◇ 5G 스마트폰 경쟁도 치열해질 듯…삼성도 발등에 불
애플-퀄컴의 전격적인 합의는 개화를 목전에 둔 5G 시대를 앞두고 5G 아이폰이 다급했던 애플이 백기 투항한 결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애플은 2020년 5G 아이폰을 출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이 일정을 맞추려면 애플의 통신칩 공급업체인 인텔이 올여름까지 샘플을 납품해야 한다.
그러나 인텔은 이미 몇 차례 마감기한을 맞추지 못했고 그 결과 애플은 신뢰를 잃은 것으로 전해졌다. 5G 통신칩이 절실했던 애플이 퀄컴과의 송사를 정리하고 협력관계를 복원한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합의로 당장 올가을께 출시될 아이폰 신작에 5G 기능이 탑재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시제품 생산부터 성능 시험, 수정, 재시험 등의 과정을 거쳐 양산형 제품이 확정되고 그때부터 제품의 대량생산에 들어가는 공정을 고려하면 이런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
5G 아이폰 출시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최초의 5G 스마트폰 갤럭시S10 5G를 이미 출시한 삼성전자나 곧 V50을 출시할 LG전자, 올해 중 5G폰 출시를 예고한 화웨이 등으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5G 아이폰 출시 전까지 시장을 최대한 선점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그 하드웨어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생태계를 한꺼번에 내놓는 과거의 전략에 비춰볼 때 애플은 독창적인 킬러 콘텐츠를 5G 아이폰과 함께 출시하며 시장 공략에 나설 수도 있다.



◇ "5G, 상업적 경쟁 넘어 이제는 군비경쟁"
통신장비 업계 1위인 중국 화웨이는 5G 레이스의 시작과 함께 궁지에 몰리고 있다. 무역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화웨이의 통신장비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이 회사 제품의 불매에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뿐 아니라 동맹국, 그리고 동맹 울타리 너머의 국가들에까지 화웨이 보이콧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과 관세 폭탄을 주고받으며 관계가 틀어진 유럽연합(EU)은 이런 호소에 적극 호응하진 않고 있지만 호주, 일본 등은 이미 화웨이 금지에 동참했다.
유럽은 특히 화웨이 금지가 5G 도입을 한참 늦출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영국 이동통신사 보다폰의 닉 리드 CEO는 2월 유럽에서 화웨이를 금지할 경우 5G의 출시가 2년 늦춰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또 올해 1월 대이란 제재를 위반하고 T-모바일로부터 기술을 절취했다며 화웨이를 형사 기소하기도 했다.
반면 중국 정부는 최근 스웨덴 통신장비 업체 에릭슨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스마트폰 관련 특허의 승인과 연관된 문제를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5G 스마트폰이 출시되면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에릭슨에게 지불해야 할 로열티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에릭슨은 지금은 화웨이에 밀려났지만 과거 통신장비 시장의 1위 업체였다. 지금도 여전히 기지국부터 단말기에 이르기까지 5G와 관련한 중요한 특허기술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5G를 둘러싼 경쟁이 이처럼 치열한 것은 산업이나 안보 측면에서 5G의 파급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미국 무선산업계를 대변하는 미국무선산업무역그룹(CTIA)은 보고서에서 미국이 4G 기술에서 선두에 선 덕분에 페이스북에서 넷플릭스에 이르는 모바일 플랫폼을 지배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통신 시장조사업체 레컨 애널리틱스는 4G 시장의 선두 지위가 미국에 1천250억 달러의 수입을 안겨줬다고 평가했다.
5G 환경에서는 인터넷에 연결된 사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에 파급력도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레컨 애널리틱스는 4G에서는 1㎢당 2천 개의 사물을 연결할 수 있었지만 5G는 100만 개의 사물을 연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는 군용 장비들도 포함된다. 미 관리들은 5G의 속도와 무수한 군사 분야 활용을 고려할 때 5G 통신망에 중국 장비를 쓰는 것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CNBC는 전했다.
CNBC는 "과학적·상업적 경쟁으로 시작한 것(5G)이 이제는 기술 분야의 군비경쟁으로 진화했다"고 지적했다.
sisyph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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