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난민·빈자 등 소외된 자들의 십자가 봐야"

입력 2019-04-20 06:22  

교황 "난민·빈자 등 소외된 자들의 십자가 봐야"
콜로세움서 성금요일 '십자가의 길' 의식 주재
성매매 내몰리는 난민여성 구출 헌신 수녀가 묵상글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프란치스코 교황(82)이 부활절을 앞둔 성(聖)금요일을 맞아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의식인 '십자가의 길'을 주재했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빈자와 난민 등 사회 중심부에서 밀려난 모든 소외된 자들은 과거 예수가 그러했듯이 오늘날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다고 비유하면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



교황은 19일 저녁(현지시간) 수 많은 신자와 관광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로마 콜로세움 앞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되고 매장될 때까지의 마지막 시간을 기억하고,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 의식을 이끌었다.
교황이 주재하는 '십자가의 길'은 통상 고대 로마 시대에 초기 기독교인들이 순교한 곳인 콜로세움 주변에서 거행된다.
교황은 이날 의식을 마무리하는 기도에서는 "당신의 십자가에서 세상의 모든 (소외되고, 버려진 이들의) 십자가를 보게 해달라"고 빌었다.
교황은 구체적으로는, 빵과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의 십자가, 가족에게 버림받아 외로운 사람들의 십자가, 정의와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십자가, 계산적인 정치인들의 닫힌 마음과 두려움 때문에 들어오는 문이 차단된 이민자들의 십자가 등을 열거했다.



이날 신자들이 십자가를 지고 14처를 돌며, 기도하는 촛불 행진이 이뤄지는 동안 낭독된 묵상글은 이탈리아 출신 선교사인 에우제니아 보네티(80) 수녀가 작성했다. 그는 인신 매매업자들에 의해 길거리 성매매 등으로 내몰리고 있는 난민들과 다른 여성들을 구출하는 데 오랫동안 헌신했다.
보네티 수녀는 묵상글에서 "가난한 이들,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 지금도 십자가의 형벌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과 연대해 이 '고통의 길'을 걷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십자가로 목걸이를 하고 성당과 가정의 벽을 장식하기는 쉽지만, 오늘날 십자가에 새로 못 박힌 이들, 즉, 노숙자, 일자리가 없는 젊은이, 말할 수 없이 큰 고통을 겪은 뒤 사회의 주변부로 내팽개쳐진 이민자들을 수용하기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보네티 수녀는 또 "정부와 대중의 무관심 속에 사하라 사막과 지중해는 피로와 배고픔, 목마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무덤'이 되고 있다"며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가 사막과 바다에서 목숨을 잃는 난민들의 처지에 탄식했다.
그의 이런 글은 난민들과 이민자들을 수용하기보다는 배척하는 정책을 펼치는 각국 정부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가톨릭의 본산 교황청을 품고 있는 이탈리아만 하더라도, 작년 6월 포퓰리즘 정부 출범 이후 지중해에서 구조된 난민들에게 자국 항만의 빗장을 거는 등 강경 난민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편, 교황은 '십자가의 길' 의식에 앞서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주님 수난 예식'을 주재했다.



추기경과 주교 100여 명이 참석한 이 의식에서 강론은 교황청 전담 강론 사제인 라니에로 칸탈라메사 신부가 맡았다.
칸탈라메사 신부는 "예수는 지상에서 거부당하고, 박탈당하고, 버려진 모든 이들, 우리가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외면하는 사람들을 대표한다"며 "모든 종교의 의무는 가난한 사람 편에 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소수의 특권층은 그들이 소비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물질을 소유했지만, 역사 이래 셀 수 없이 많은 빈자는 자녀들에게 줄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도 없이 살고 있다"고 한탄했다.
교황은 부활절 전야인 20일 밤에는 '파스카 성야' 미사를 집전하고, 부활절 당일인 21일에는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집전한 뒤 부활절 메시지 '우르비 엣 오르비'(Urbi et Orbi·로마와 온 세계를 향해)를 발표할 예정이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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