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출입구 하얀 국화 쌓여·참사 현장 도색…심리회복 상담 이어져
(진주=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꽃잎 휘날리며 울부짖던 너의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휘날리던 꽃잎의 슬픔을 알아보지 못하였구나. 밤하늘이 걷히우고 이 자리에 하얀 꽃을 놓아본다."
지난 17일 방화 살인 참사가 난 경남 진주시 가좌동 아파트 현장 출입구에 하얀 국화가 차곡차곡 놓였다. 국화 옆에는 한 주민이 작은 쪽지에 쓴 시(詩)가 놓였다.
참사가 발생한 지 5일째.
휴일을 맞은 주민들이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사건 현장에 멍하니 서 있다가 말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참사가 난 아파트 비상계단과 승강기에는 여전히 방화 당시 메케한 냄새가 곳곳에 배어 있었다.
방화살인범 안인득(42)이 불을 지른 4층 자신의 아파트와 복도 등의 내부 검은 벽면 등에는 도색작업이 시작됐다.
하지만 뜨거운 화염이 치솟아 검게 탄 아파트 외벽은 아직도 그대로다.
아파트 도색 작업자는 "내부 도색부터 한 후 외부 벽면은 내일쯤이나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전경안 관리소장은 "주민들이 검게 탄 건물 안팎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 시설환경 개선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전 소장은 "주민들은 물론 외부에서도 희생자 가족을 돕고 싶어하는 문의가 많은데 모금 운동을 위한 계좌 지정도 서둘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5일째 '현장 이동 통합 심리상담센터'로 바뀐 아파트 경로당과 작은도서관은 여전히 트라우마를 겪는 주민 상담 발길이 계속되고 있다.
303동 주민 김모(68) 씨는 "무엇보다 큰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우린 이렇게 멀쩡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라고 말했다.
아파트 관리소 회의실에서는 이 아파트 운영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난 20일부터 참사가 난 303동 주민 등 이 아파트 주민들의 이주 관련 상담도 활발하게 이어졌다.
303동에 사는 송모(82) 씨는 "지금도 밤에 누워 있으면 참사 당시 생각이 떠올라 가슴이 너무 떨려 이제는 다른 동으로 옮겨야 잠을 청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참사가 난 현장을 오가면서 "다들 형편이 어렵지만 그래도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마을 공동체였는데 아픔을 싣고 회복해야겠지요"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choi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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