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주요 20개국 5억4천만명 '디지털 빈곤층' 전락 우려

입력 2019-04-22 15:51  

2030년 주요 20개국 5억4천만명 '디지털 빈곤층' 전락 우려
미 딜로이트 보고서…"인공지능이 개인 신용을 점수로 평가"
고득점자엔 '지원효과', 저득점자는 '빈곤 악순환' 양면성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방대한 정보를 활용하는 데이터 경제가 확산하면서 모든 가치를 수치로 표시하는 사회가 도래했다. 인공지능(AI)이 신용과 장래성을 평가해 점수를 매기는 '스코어링(Scoring)' 기술이 감춰진 가치를 발굴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실제로 개인신용을 점수화해 융자 등에 활용하는 서비스가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 기존 금융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 확산하고 있다. 은행 거래나 직장, 소득 등 서류만의 심사가 아니라 주로 스마트폰에서 수집한 생활 데이터로 신용을 평가한다.
베트남에서는 스마트폰 요금 지불 내역과 페이스북 친구 등의 데이터를 토대로 융자조건을 평가하는 '홈 크레디트' 앱이 활용되고 있다.


호찌민시에 거주하는 회사원 조디에 쯔이(26)는 최근 월급의 절반에 가까운 1천만 동(약 50만 원)짜리 스마트폰을 구입했다. 개인 데이터를 채점한 결과 900점 만점으로 평가한 융자조건을 충족했기 때문이다. 본인은 점수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그는 600만 동을 월리 1%로 빌렸다. 절차도 아주 간단했다고 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은행계좌가 없는 사람은 세계적으로 17억명에 이른다. 이들의 3분의 2는 휴대전화를 보유하고 있다. 스코어링 융자는 기존 금융기관이 간과해온 신용을 발굴해 창업으로 연결하기도 한다.
데이터를 토대로 산출하는 수치는 순기능과 역기능의 양면성이 있다. 스코어가 항상 약자를 돕는다고는 할 수 없다.
미국 딜로이트 토마스 컨설팅이 이달에 내놓은 시산결과는 부정적 측면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딜로이트는 디지털화로 2030년까지 주요 20개국(G20) 근로자 6명 중 1명꼴인 5억4천만명이 새로운 빈곤층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을 내놓았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22일 전했다.
보고서는 "2030년까지 G20에서 최대 5억4천만명의 '버추얼 슬럼'이 생겨날 것"으로 예상했다. 버추얼 슬럼은 앞으로 출현할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빈곤층이다. 개인의 스코어가 취업, 주택 임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유되면 점수가 낮은 사람은 모든 서비스에서 배제된다. 취업에 실패해 저임금 업무를 전전하면 점수가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야모리 아유미(矢守?夕美) 매니저는 그렇게 되면 "빠져 나오기 어려운 곤경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새로운 빈곤층 등장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꼽힌다. 알리바바그룹의 금융 자회사 앤트파이낸셜이 전개하고 있는 '즈마신용(세서미크레디트)'은 구매이력과 교우관계 등을 망라한다. 정부도 개인정보를 관리하면서 과거 부정을 저지른 사람의 항공기 이용 등을 금하고 있다. 관민 양측의 데이터 관리가 이뤄지면 신용이 낮은 사람은 사회 전체로부터 배제될 가능성이 있다.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조장할 위험성도 있다. 마이클 무어 미국 로스앤젤레스 경찰본부장은 지난달 항의하는 시민 100여명을 상대로 "데이터 사용 방법을 시정하겠다"고 다짐했다. 2011년부터 사용해온 범죄예측 시스템이 도마위에 올랐다. 인공지능(AI)이 과거 수사정보를 분석해 범죄 가능성이 높은 인물과 지역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일부에서 범죄가 감소했지만 "흑인 등에 대한 과잉단속으로 이어졌다"는 비난을 받았다. 과거 수사에서 있었던 인종차별의 영향으로 '차별을 재생산했다'는 것이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은 새로운 난민지원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조국에서의 교우관계와 이력 등의 기록을 피난처로 반출하도록 하는 제도다. WFP가 지원한 61개국, 3천만명 이상의 데이터가 기본 자료다. 난민 대부분은 조국에서의 기록을 잃는다. 스코어 평가의 대상도 되지 않기 때문에 홈리스와 마찬가지 상황에 내몰린다. 엔리카 폴카리 WFP 최고 정보책임자는 "과거 기록을 들고 나올 수 있으면 제로에서 출발하는 비극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lhy501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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