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 '파우스트'에서 영감 얻어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기존 지역·계층 간 대립에 더해 세대 간 갈등까지 더 심각하게 부상하면서 토머스 홉스가 말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현실화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갈등을 해소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대립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있다.
극작가 출신 김호연 신작 장편소설 '파우스터'(위즈덤하우스 펴냄)는 이런 세대 간 반목을 사이언스 픽션 스릴러로 그려냈다.
제목에서 보듯 괴테 불후의 명작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한테 영혼을 팔고 젊은 육체와 쾌락을 얻는 노학자 파우스트의 번민을 바라보며 소설을 구상하게 됐다고 작가는 말한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거래 구조는 이 소설에서 '메피스토 시스템'으로 형상화한다.
메피스토는 노인이 젊은이 뇌에 특수 연결체를 삽입해 대상 젊은이의 삶을 자신의 것처럼 즐기는 최첨단 특수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서 노인은 '파우스트', 젊은이는 '파우스터'로 칭한다. 메피스토 회원인 파우스트는 파우스터의 미래를 메피스토 시스템을 이용해 조종할 수 있다. 나이 65세 이상이면서 100억 원을 내면 파우스트로 가입할 수 있다.
자유와 인생을 송두리째 강탈당한 젊은 주인공들은 욕망을 채우고자 끔찍한 일을 벌인 '늙은이들'에 맞서 싸운다. 이들이 빼앗긴 자아를 되찾을 수 있을까?
작가는 이처럼 기성세대가 신세대를 착취하는 구조를 '메피스토 시스템'으로 상징했다.
다만 세대 간 갈등을 너무 일방적 시각으로 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은 아쉬움을 준다. 복잡계인 인간 세상에서 한쪽은 절대선이고 반대쪽은 절대악이기는 힘든 까닭이다.
연금, 건강보험, 정규직 일자리 등에서 기성세대가 미래세대 곳간을 갉아 먹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기성세대가 일군 풍요 속에 사는 신세대 역시 미래 자산을 미리 당겨쓴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라이언 레이놀즈 주연 2015년 영화 '셀프/리스(Self/less)의 이야기 구조와 흡사하다는 느낌도 있다.
'셀프/리스'는 부유한 노인들이 자신의 기억을 매력 있고 건강한 젊은이(샘플)에 이식해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산다는 내용으로, 기성세대의 이기심을 비판하고 자유, 인권의 중요성 등을 부각한 작품이다.
김호연은 이야기꾼으로서 미덕은 충분히 갖춘 것으로 보인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답게 문학적 성취보다는 스토리텔링의 재미를 추구한다.
전작 고스트라이터즈(2017)에서 보듯 개인의 자유와 휴머니즘을 중시하면서도 '자폐적 엄숙주의'에 빠지지 않는 모습을 유지하는 것도 작가의 매력이다.
김호연은 작가의 말을 통해 "소설가로, 인간으로, 엄청난 삶의 정수를 보여준 괴테의 노고와 유산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544쪽. 1만6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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