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320만엔 일시금 지급' 법안 국회 통과
아베 총리 '반성·사과' 담화 발표…"공생사회 실현 노력 다할 것"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일본 정부가 태평양전쟁 종전 후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반인륜적 불임수술 정책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법안이 24일 통과돼 보상이 시작된다.
일본 참의원은 이날 본회의를 열어 초당파 의원연맹이 지난해 3월 논의를 시작해 의원입법 형식으로 발의한 구(舊) 우생보호법 피해자 구제법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이 법에 따라 피해자들은 1인당 일시금으로 320만엔(약 3천200만원)을 받는다.
또 국회는 강제 불임수술 같은 장애인 차별 정책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문제의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교도통신은 장애인 차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우생 수술 규정이 삭제된 지 23년 만에 국가 차원의 구제가 이뤄지게 됐다며 이르면 올 6월 지급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급 대상은 불임수술로 구제법 시행일 현재 생존한 피해자 본인으로 국한된다. 사망자나 배우자 등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다만 강제수술뿐만 아니라 본인이 동의한 경우도 지급받을 수 있다.
일본에서는 1948년부터 1996년까지 시행된 구 우생보호법에 따라 유전성 질환자, 지적장애인 등을 상대로 사실상의 강제 중절수술과 불임수술이 광범위하게 시행됐다.
이른바 '불량한 자손'을 낳지 못하게 한다는 명분이었다.
일본 정부는 법 시행 과정에서 신체 구속 등을 용인하고, 지자체들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무리하게 수술 대상을 찾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도통신은 국가통계로는 2만5천여 명이 불임수술을 받은 것으로 돼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개인기록은 3천명 정도만 확인된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담당 부처인 후생노동성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인정심사회를 구성해 수술기록이 없을 경우 간접 기록이나 본인 주장, 의사 소견 등을 근거로 지급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구제법안은 피해자들이 심신에 많은 고통을 받아왔다고 전제하고 "우리는 각자의 입장에서 진지하게 반성하고 마음속 깊이 사죄한다"는 내용을 전문에 넣었다.
그러나 일각에선 법안 심의 때 피해자 측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은 데다가 국가 책임이 명확하게 적시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구 우생보호법 피해자들을 지원해온 전국피해변호단의 니사토 고지(新里宏二) 공동대표는 피해자 측 의견을 듣지 않은 상황에서 구제책이 마련돼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2일부터 유럽과 북미 6개국 순방길에 나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구제법안이 참의원 본회의를 통과한 뒤 반성과 사과의 내용을 담은 자신 명의의 담화를 발표했다.
아베 총리는 담화에서 "구 우생보호법으로 많은 분이 특정 질병이나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 등으로 생식불능 수술 등을 강요당해 심신에 다대한 고통을 받아왔다"며 "구 우생보호법을 집행한 정부로서 진지하게 반성하고 마음속 깊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런 사태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모든 국민이 질병이나 장애 유무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서로 인격과 개성을 존중하면서 공생하는 사회를 실현하는 데 최대한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 차원에서 구 우생보호법 피해자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힌 것은 처음이라며 총리 담화가 각의 결정 절차를 밟지 않았고 구제법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법적 책임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일본 곳곳에서는 우생보호법 관련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최고 3천만엔(약 3억원)대 후반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첫 판결은 내달 28일 센다이(仙台) 지방법원에서 나온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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