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영유아 콘텐츠' 정기배송 '우따따' 서비스
(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 작업복을 입고 공구를 손에 든 신데렐라가 우주선이 고장 나 표류하던 왕자의 우주선을 고쳐주고 청혼을 받는다. 신데렐라의 대답은 "결혼하기에는 제가 너무 어려요. 그러니 왕자님의 우주선 정비공이 돼 드릴게요!"
그림책 '별나라의 신데렐라'(어썸키즈 刊)에서 묘사된 신데렐라의 모습과 이야기의 결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
'정형화된 성 역할을 공고하게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전래동화, 현대에 나왔더라도 '남자다움', '여자다움'을 강조하는 문화를 내포한 아이용 콘텐츠를 배제하고 '성평등 영유아 콘텐츠'를 선별해 정기 발송하는 서비스가 나와 눈길을 끈다.
스타트업 '딱따구리'는 다음달 중순부터 한 달에 한 번 그림책 2권 또는 4권과 관련 자료를 4세 이상의 아이가 있는 가정에 배송하는 '우따따'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등을 통해 27일 밝혔다.
선별된 그림책을 신청인 가정에 정기 배송하면서 서비스를 구독하는 양육자와 자녀가 책의 내용을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도록 그림 그려보기, 관련한 이야기해 보기 등의 내용으로 꾸민 워크북도 함께 제공할 예정이다.
수많은 그림책 가운데 어떤 책이 아이들이 성평등 사고를 키워가는 데 도움이 될지는 ▲ 등장인물이나 설정을 묘사할 때 '얌전한 여자 주인공', '용감한 남자 주인공' 같은 성별 고정관념이 들어갔는지 ▲ 등장인물의 대화에 성차별적인 내용이 있는지 ▲ 여성 주인공이 주체적 사고와 행동을 하는지 ▲ 남성 주인공이 흔히 '남성적'이라고 잘못 인식돼 온 짓궂거나 과장된 행동을 하는지 등을 기준으로 판단했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그림책 100여권을 발송 대상으로 추렸다. 남녀 구분 없이 주인공 아이들이 무술을 배우는 '코숭이 무술', 왕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꿈꾸고 행동하는 신데렐라가 나오는 '별나라의 신데렐라' 등이 꼽혔다.
서비스를 기획한 '딱따구리' 유지은 대표(32)는 원래 브랜드 스토리텔링 회사를 운영했다. 어느 날 우연히 조카와 유아용 애니메이션 뽀로로를 함께 보다가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한 것이 우따따 서비스를 창업하게 된 계기가 됐다.
"사고를 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건 모두 남성으로 표현된 캐릭터였고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거나 보조적 역할로 등장하는 건 여성 캐릭터였어요. 옷차림도 뽀로로와 에디 같은 남아 캐릭터는 뛰어놀기 편한 복장인데 여아 캐릭터인 루피나 패티는 놀기엔 불편해도 사회적으로 여성스럽다고 인정되는 복장을 하고 있고요"
그전부터 '여성 혐오'가 어디에서 생기는지 궁금했던 그에게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접하는 아동용 콘텐츠가 성별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것이 그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유 대표는 "백지 같은 아이들의 생각이 어른들의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물들기 전에 바로잡아 주는 일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다"면서 "아이가 성별을 이유로 자신의 행동이나 미래를 제약하고 스스로 한계를 만드는 것은 여아에게든 남아에게든 모두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자아이든 남자아이든 누구나 악당을 무찌르는 쾌감을, 남을 돌봐주는 다정함을, 운동의 상쾌함을, 펑펑 울었을 때의 속 시원함을 배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서비스의 이름을 '우따따'로 지은 것도 딱딱한 나무를 쪼아 안락한 둥지를 만드는 딱따구리처럼 이 사회의 견고한 성별 고정관념의 벽을 뚫어보자는 의미라고 그는 설명했다.
정식 서비스 개시에 앞서 신청을 받은 체험단으로 성 평등 그림책을 받아본 7살 여자아이의 엄마는 체험 후기에서 "전래동화 신데렐라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는데 딸이 더 늦기 전에 '결혼'이 아닌 '꿈'을 이루는 신데렐라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cs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