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황예림 인턴기자 = 푸르게 물든 나무와 살랑대는 바람, 반려동물과 산책하러 나가기 더없이 좋은 날씨지만 공원이나 텃밭을 거닐 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동물이 소량만 섭취해도 죽음에 이를 만큼 치명적인 유박(油粕·oil cake)비료가 봄철부터 산책로, 텃밭 등에 널리 사용되기 때문이다.
유박비료는 피마자, 참깨, 들깨 등의 기름을 짜고 난 찌꺼기를 주원료로 한 비료로 식물 성장에 필요한 유기 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텃밭이나 녹지의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데 흔히 쓰인다.
문제는 친환경 비료로 알려진 유박비료를 동물이 섭취하면 구토, 설사, 혈변 등의 증상을 보이다가 2∼3일 안에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점이다. 유박비료의 원료 중 피마자에 들어 있는 맹독성 물질 '리신'이 동물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동물암센터 내과 임채영 원장은 "유박비료를 먹고 온 반려견 가운데 90% 이상은 사망한다"며 "아주 소량만 먹어도 증상이 나타나는 데다 아직 해독제도 개발되지 않아 특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박비료를 섭취한 야생·반려동물의 피해 사례는 매년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남양주시의 한 애견 놀이터에 뿌려진 유박비료를 먹은 리트리버가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피해를 본 견주 A씨는 "운영업체에서 유기농 비료를 뿌렸다며 문제없다고 말했지만 알고 보니 유박비료였다"면서 "키우던 리트리버가 비료를 먹은 지 3일이 지나자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사건이 발생한 업체 관계자는 "동네 농협에서 나눠준 비료를 뿌렸는데 표지 앞면에 친환경이라고 쓰여 있어서 반려견에게 위험한 것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유박비료로 인한 피해 사례가 계속되자 농촌진흥청은 2017년 피마자를 원료로 사용하는 비료의 리신 함량을 10㎎/㎏ 이하로 제한했다. 뿐만 아니라 유박비료 포장지 앞면에 '개, 고양이 등이 먹을 경우 폐사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의 손에 닿는 곳에 놓거나 보관하지 마세요'라는 주의 문구를 적색으로 새기도록 의무화했다. 그러나 여전히 주의 문구를 표기하지 않은 피마자 유박비료를 인터넷 등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동물에게 유해하다는 사실이 아직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다 보니 반려동물이 다니는 공간에 유박비료가 뿌려져 있을 개연성이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는 반려동물이 거리에 떨어져 있는 것을 주워 먹지 않도록 잘 살피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라고 조언한다.
대구 수호동물병원 최재영 원장은 "유박비료는 사료처럼 생긴 데다가 고소한 기름 냄새가 나서 먹성 좋은 강아지들이 먹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며 "봄철이나 초여름엔 밭처럼 비료가 뿌려져 있을 만한 곳의 산책을 최대한 피하고, 자동으로 끈이 늘어나는 목줄 대신 길이가 적절한 가슴 줄을 사용해 무언가 주워 먹으려는 모습을 발견하면 바로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미 유박비료를 먹은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최 원장은 반려동물을 살릴 수 있는 골든 타임은 '15분'이라고 말한다. 유박비료를 섭취한 것으로 의심되면 바로 가까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는 "구토 등 증상이 나타났을 땐 이미 손 쓰기 힘든 상황이 된다"며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섭취한 즉시 병원으로 데려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일 병원에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과산화수소 희석액을 먹여 반려견의 구토를 유발하는 방식으로라도 응급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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