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 개최 등 성과에도 종전선언 등은 진전 없어
북미 교착 장기화 속 4차 남북 정상회담 추진…北응답 미지수
비핵화 합의 추동 위해 북미 대화 테이블에 앉히는 게 급선무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남북관계 발전의 불가역성을 확보하고, 비핵화의 선순환을 위한 토대를 구축했습니다."
지난해 4월 27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위원장을 맡은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는 회담 직후 남북 정상이 발표한 '판문점 선언'을 두고 이같이 자평했다.
실제 4·27 정상회담이 개최된 뒤 1년 사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북 정상이 분단의 벽을 허물어 신뢰에 기반을 둔 관계를 구축했고 비무장지대를 포함한 대치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한 것은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성과다.
이는 이후 열린 두 번의 남북 정상회담을 가능하게 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두 번이나 비핵화 테이블에 마주 앉게 한 원동력이었다.
지난해 8월에는 2년 10개월 만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이뤄졌고 한 달 뒤 문을 연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는 수시로 남북 간 회담과 협의가 진행됐다.
김 위원장은 첫 비핵화 조치라는 평가를 받는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했고 그 현장에 외부 사찰단의 사찰을 수용하기도 했다.
이렇듯 4·27 정상회담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비핵화 정세를 극적으로 바꿔놓았으나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연내 종전선언을 하고 나아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 평화체제 구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정상회담을 개최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대타결을 이루겠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구상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남북미 정상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고, 종전선언 구상 역시 해가 바뀌면서 언제 현실화할지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무엇보다 비핵화 로드맵이 나올 것으로 기대됐던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아무런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 채 끝나며 문 대통령의 '중재역'이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특히 비핵화 대화를 재개하고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문 대통령의 노력에도 북미 정상이 좀처럼 서두를 기미를 보이지 않아 교착이 길어질 공산이 보이며 문 대통령의 고심도 깊어지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미네소타주에서 열린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회의에서 3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두고 "대화는 좋은 것"이라면서도 "나는 빨리 가고 싶지 않다"고 언급, '속도조절' 입장을 재확인했다.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뚜렷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가운데 김 위원장이 북러 정상회담에 임하는 등 북한 역시 서두르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미 정상의 이 같은 태도는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일종의 냉각기를 가지면서 본격적인 협상테이블에 앞서 서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기싸움'의 일환으로 보이지만, 자칫 상황이 다시 악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와 평화정착이 시급한 문 대통령으로서는 다시금 '마중물 외교'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결국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로 4차 남북 정상회담의 조기 추진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남북 대화를 '마중물' 삼아 북미 정상이 마주 앉는 대화 테이블을 조속히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 21일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보내는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갖고 있다며 4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 이 메시지가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비핵화 대화의 진전을 보기 위한 한미 간 입장 조율은 어느 정도 일단락된 만큼 이제는 남북 정상이 만나 꼬인 실타래를 풀 차례가 됐다는 '신호'를 발신한 것으로 읽힌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 후 나흘 뒤인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추진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여건이 되는대로 장소·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남북이 마주 앉아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넘어서는 진전된 결실을 볼 방안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논의하기 바란다"며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받은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논의를 원한다는 것은 결국 북미 모두 수긍할 만한 로드맵을 도출하는 정도로 공을 들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문제는 북한이 문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개최 제안에 아직 호응하지 않는 데다 김 위원장을 대화 테이블 앞에 앉힐 데려올 묘수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은 청와대가 공을 들여온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 원칙에 입각한 영변 핵시설 폐기나 풍계리 핵실험장 검증 등 연속적인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을 제안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런 전망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빅딜'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다양한 스몰 딜이 이뤄질 수 있다"는 말로 협상의 여지를 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결단할 경우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이 가능하다고 한 것을 근거로 3자 간 종전선언 등을 북측에 제시할 카드로 고민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는다.
남북미 정상이 그간 쌓아온 신뢰와 비핵화 의지를 토대로 한 '톱다운 방식'에 이견이 없는 만큼 1년 전 판문점 선언에 명시됐던 종전선언이 '비핵화의 입구'로서 추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목소리를 키우는 러시아를 통해 교착에 빠진 비핵화 대화 재개에 필요한 동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북러 정상회담 후 공식 연회 연설에서 "러시아는 한반도 긴장 완화와 동북아 지역 전체 안보 강화를 위한 협력을 계속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정상포럼(26~27일)에 참석해 중국과 미국 지도부에 김 위원장과의 회담 결과를 솔직하게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에게 미국 측에 자신의 입장을 알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의 말대로 러시아가 북미 간 또 하나의 소통 채널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서로의 입장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비핵화와 관련한 견해차를 좁힐 또 다른 계기가 될 공산이 있다.
다만 김 위원장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후 첫 대외 행보로 푸틴 대통령을 만난 것은 미국과의 장기전에 대비한 우군 확보 차원으로 보이는 만큼 북중러 공동전선이 공고해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북러 정상회담으로 국제적인 대북제재 공조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을 우려하는 미국 측의 기류도 면밀히 주시해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일각에서는 북러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체제보장을 위해 6자회담 재개 필요성을 언급한 러시아의 행보가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를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한다.
그러나 남북미 정상이 톱다운 방식으로 지금까지 비핵화 국면을 끌어온 상황에서 '바텀 업' 방식의 6자회담 틀을 수용할 확률은 높지 않아 보인다.
문 대통령 역시 지난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직후 서울로 돌아와 한 대국민 보고에서 "이번 비핵화 협상은 북미 간 '톱다운' 방식이라는 점에서, 6자회담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6자회담이라는 형식에 선을 그으면서 남북미 정상 간 결단으로 마련된 이번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kj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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