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밀착' 속 6자회담 카드까지…복잡해진 비핵화협상 美 셈법

입력 2019-04-25 22:57   수정 2019-04-25 23:10

'북러 밀착' 속 6자회담 카드까지…복잡해진 비핵화협상 美 셈법
북중러 공조전선 강화 흐름…제재균열 경계 속 '지렛대 약화' 우려
톱다운 협상판 흔드는 '6자회담' 카드 경계…북미교착 장기화 가능성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블라디보스토크 정상회담을 통해 결속을 과시, '비핵화 공조'에 나서면서 미국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두 정상의 첫 만남을 계기로 북·러 밀착이 한층 더 가속하게 된 가운데 푸틴 대통령이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을 들어 6자 회담 카드까지 거론하면서 비핵화 협상 방정식이 한층 더 고차원으로 돌아가게 됐기 때문이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국면에 빠져든 상황에서 '러시아 변수'까지 불거지면서 북·러, 나아가 북·중·러로 이어지는 북한과 그 우방들의 공동전선이 더욱 공고해질 경우 미국으로선 그만큼 협상 주도권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북·중에 이은 북·러간 밀착 움직임을 견제해온 미국 측은 이날 북러 정상회담 결과를 예의주시하며 대북 협상 전략을 가다듬을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트윗 등을 통한 즉각적 반응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 극동연방대학에서 5시간 동안 단독회담과 확대 회담, 공식 연회 순으로 마라톤 정상회담을 하고 비핵화 공조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북미 간 교착이 장기화하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우군 확보를 통해 제재완화 돌파구 마련 등 대미 협상력을 강화하려는 북한과, 한반도 문제에 있어 적극적 '플레이어' 역할을 함으로써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상황에서 열린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최우선 과제인 제재해제 문제 해결에 실패한 김 위원장으로선 장기전에 대비하면서 제재완화 등에서 미국을 압박하려는 포석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푸틴 대통령이 회담 후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 측에 자신의 입장을 알려달라고 우리에게 요청했다"며 향후 '중재자'로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곧바로 방중,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참석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만날 예정이어서 북·중·러 간 연대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에 이어 러시아까지 비핵화 대화 판에 본격적으로 끼어드는 모양새가 연출되면서 미국 측의 속내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일부 외신은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워싱턴이 북한을 힘으로 누르려고 하는 데 대해 은근히 한 방을 먹였다"라는 분석을 달기도 했다.
특히 미국이 대북 압박의 최대 무기로 여겨온 국제 제재 전선에 균열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로선 가장 큰 고민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 이사국인 러시아가 만장일치로 통과된 유엔의 제재 결의를 노골적으로 회피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완화론에 힘을 실으며 북한에 대한 지원사격에 본격적으로 나설 경우 미국이 주도해온 '최대 압박' 전략이 느슨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제시한 '연말 시한'에 대해 미국이 '빅딜론'을 고수한 채 "서두를 것이 없다"며 속도조절론으로 받아친 데도 대북제재가 유지되는 한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그만큼 제재 전선이 이완될 경우 미국으로선 가장 큰 대북 지렛대가 약화하는 상황인 셈이다.
이와 함께 푸틴 대통령이 북한의 체제 보장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대북 체제 안전 보장 논의를 위한 6자 회담 띄우기에 나선 데 대해서도 미국의 심기는 불편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푸틴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미국의 체제보장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를 포함하는 6자 회담이 부활될 수 있다고 말했다"며 이는 제재완화에서 체제안전 문제로 논의를 전환시켰다고 분석했다.
6자 회담 재가동은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전개돼온 북미간 톱다운 방식의 현 비핵화 협상 틀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것이 될 수 있다. 협상에서 '뒷배'를 확보하려는 북한과 영향력을 키우려는 중·러 모두 다자협의체 구성에 있어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상황이지만, 미국으로선 플레이어가 많아지는 6자 회담 카드가 달가울 리가 없어 보인다.
실제 '슈퍼 매파'인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인 지난 1월 한 인터뷰에서 과거 6자 회담의 틀은 실패했다고 규정하면서 북미 정상 간 직접 담판 형태의 현 북미 협상 방식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 적용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그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접근법을 시도해왔다. 6자 회담은 분명히 실패했으며,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직접 협상을 해 왔다"며 6자 회담 틀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피력했다.
이처럼 '러시아 변수' 등으로 비핵화 방정식이 복잡하게 돌아가게 되면서 북미 간 교착상태가 더욱 장기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hanks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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