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노 김기완 "서글서글한 얼굴, 악역 맡으면 확 바뀌죠"

입력 2019-04-28 10:00   수정 2019-04-28 11:54

발레리노 김기완 "서글서글한 얼굴, 악역 맡으면 확 바뀌죠"
8년 만에 국립발레단 수석승급 뒤 '잠자는 숲속의 미녀'서 첫 전막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제가 남성적이라기보다 서글서글한 이미지잖아요. 동화 속 왕자님 역에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주시는데, 내면은 캐릭터가 강한 역할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악역을 맡으면 확 바뀌어요. 반전이죠? 하하."
발레리노 김기완(30)의 삶은 편안한 인상과 달리 도전의 연속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가을, '남자가 쫄쫄이 입고 춤춘다'고 놀리는 아이들 틈에서도 발레학원을 빼먹지 않던 소년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완전히 '꽂혔다'. 빌리처럼 영국 로열발레단에 가고 싶어 아침에 식빵과 버터 먹는 연습까지 했다.
중학생 때는 당시 최고 아이돌 동방신기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에게 스타는 발레리노 엄재용이었다. 강원도 춘천에서 서울로 올라와 예원학교에 진학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춤을 이어갔다. 그러다 스무 살이던 2009년,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 피나는 재활과정을 거쳐 2011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했고, 8년 만인 올해 1월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지난 24일부터 28일까지 국립발레단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 출연한 김기완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최근 만났다. 이 작품은 김기완이 수석 승급 후 서는 첫 전막 무대이다.
김기완이 맡은 타이틀롤은 마녀 카라보스. 오로라 공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세례식에 초대받지 못한 그는 공주가 열여섯 살이 되는 해에 물레바늘에 찔려 죽게 될 것이라고 저주한다. 공주는 저주대로 16년 뒤 물레바늘에 찔리고 100년의 잠에 빠진다. 100년 뒤 데지레 왕자의 키스로 저주가 풀린다.



카라보스가 사소한 일로 100년 넘게 원한을 간직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김기완은 명쾌한 답을 내놨다.
"클래식 발레는 동화에 기반을 뒀기 때문에 언어로만 설명하면 자칫 유치해 보일 수 있어요. 생일 파티에 초대 못 받았다고 원한을 품다니, 얼마나 웃긴 일이에요. 하지만 모두가 아는 단순한 내용을 음악, 안무에 접목했을 때 훌륭하게 의미가 부여되는 게 클래식의 미덕 같아요."
카라보스가 오로라 공주와 데지레 왕자의 결혼식을 증오에 찬 눈으로 지켜보는 엔딩에 대해선 "선(善)이 있으면 악(惡)도 있다는 대비가 강렬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기쁨의 순간을 살더라도 악은 잠시 모습을 숨기고 있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독 점프가 많은 카라보스 역할이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엔 고개를 끄덕였다.
"굉장히 힘들어요. 무대 오르기 전에 한숨 두 번 쉬고 나가요.(웃음) 저는 카라보스가 '마녀'이지만 여성 캐릭터라고 해석하진 않아요. 성(性)을 떠나서 악과 어둠의 상징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남성적 동작이 나오지 않게 노력했고, 너무 약해지지도 너무 강해지지도 않는 중간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발레단 최고 무용수 자리까지 올랐지만 김기완은 담담했다. 책임감이 더 큰 자리라고 했다.
그는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땐 굉장히 기분 좋았다. 다만 늘 상상했던 일이고, 갑작스럽지 않고 예정됐던 거라 차분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특별히 마음가짐에 변화가 있진 않다. 공연할 땐 늘 긴장되고 힘들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며 "발레 팬들이 '승급 후 첫 전막'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오실 테니 책임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김기완은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27)의 형이기도 하다. 한 콩깍지에 든 콩처럼 우애 좋다는 이들은 인터넷 전화로 사생활부터 작품 이야기까지 모든 걸 공유한다. 그는 자신의 태블릿에 저장된 동영상의 50%는 전설적인 옛 무용수들의 작품, 40%는 동생의 활동을 찍은 자료이고 자신의 영상은 10%뿐이라고 했다.
"저는 2인무가 편한데, 동생은 솔로가 편하대요. 서로 이런 걸 얘기하다 보면 동생은 2인무 실력이 느는 것 같대요. 그런데 저는 기대치를 동생에게 잡아서 그런지, 솔로가 그만큼 느는 것 같지 않더라고요.(웃음)"

올해로 발레 입문 20년이 된 그에게 무용수로서 가장 필요한 미덕이 무엇인지 물었다.
"일단 체력은 뺄게요. 그건 기본이라서요. 체력이 없으면 테크닉도, 파트너와의 호흡도 불가능해요. 그 외에는 못하는 것만 파고들기보다, 잘하는 것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지 고민하는 게 중요해요."
국내 최정상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자리까지 꿰찬 그에게 더 이루고 싶은 꿈을 물었다.
그는 "롱런하는 무용수가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앞으로 생생한 후배들이 치고 올라올 테고, 저는 언젠가 꺾이는 체력이 될 거예요. 그때도 경쟁해서 당당히 캐스팅되고 싶어요. 단순히 오래 춤춰서 존경받은 게 아니라, 마흔 살이 돼도 실력으로 인정받는 게 유일한 목표입니다."
클래식은 진입 장벽이 높다고 여기는 관객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 걸 고민하지 마세요. 무용수 신체의 훌륭함, 높이 점프하거나 뱅글뱅글 회전할 때 움직임부터 차차 재미를 느끼면 됩니다. 보면 볼수록 달라 보이는 게 클래식 발레의 묘미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cla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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