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언론 '사우디 지목' 주장…전후 문맥ㆍ정황상 한국 가능성 커
지난 2월 우리 정부 겨냥해 "5억불 더 지급" 주장 되풀이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임하은 인턴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위스콘신주 그린베이 연설에서 방위비 분담 문제를 거론하며 언급한 국가가 어디인지를 놓고 혼선이 빚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나라를 지키면서 우리는 50억 달러(약 5조8천억원)를 쓰고 있다"면서 "(그 나라를 지켜주면서) 돈을 얼마나 쓰냐고 장군에게 물었더니 1년에 50억 달러를 쓴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 나라는 얼마를 내냐고 물었더니 5억 달러(약 5천800억원)를 쓴다고 답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그 나라에 전화해서 '좋지 않다'고 했다. 45억 달러를 손해 보는 일은 더 할 수 없다고, 미친 일이라고 말했다"며 "그러자 상대는 (내년)예산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5억 달러를 더 줄 수 있다고 했다. 난 더 원한다고 말했고, 그래서 그들은 5억 달러 이상을 내기로 했다. 전화 한 통에…"라고 강조했다.
해당 국가에서 이미 예산이 정해졌기 때문에 5억 달러만 더 줄 수 있다고 말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그 누구도 당황스럽게 하고 싶지 않다"면서 해당 국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한 국가(one country)'라고만 말했다.
이를 두고 국내 대부분의 언론이 한국을 향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로 보인다고 보도했으나, 29일 일부 매체가 뉴욕타임스(NYT), 알자지라 등을 인용해 사우디아라비아를 지칭한 것이라고 주장해 오보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연합뉴스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분석한 결과, 이날 연설에서 그가 사우디를 언급한 것은 맞지만, '전화 한 통화로'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했다고 주장한 국가는 한국일 가능성이 크다.
우선 '50억 달러 비용', '5억 달러 인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각료회의에서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에 동의했다'고 밝히면서 언급했던 수치와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에도 미국이 한국의 방위를 위해 연간 50억 달러의 비용을 들이고 있고 한국은 이러한 규모의 자국 보호 비용에 대해 5억달러만을 지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당시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수치가 사실과 달라 논란이 일었다.
한국과 미국이 10차 분담금 특별협정(SMA)에서 합의한 액수는 전년도(9천602억원)보다 787억원(8.2%) 인상된 1조389억원으로 '전화 한 통화에 5억달러(5천800억 원)를 더 내도록 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한국 정부 부담금이 통상 미군 주둔 비용의 40∼50%인 점을 고려하면 미국이 지출하고 있다는 '50억달러'는 터무니없이 큰 수치다. 이는 당시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팩트체크를 통해 지적한 내용이기도 하다.
국내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 번 뇌리에 박힌 잘못된 수치를 계속 되풀이하는 경향이 있으며, 추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높은 금액을 언급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숫자를 한 번 잘못 이야기하면 계속 그렇게 이야기한다"면서 "주한미군 숫자만 해도 2만8천500명인데 3만8천명이라고 말한 뒤 계속 틀리게 이야기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박 교수는 "현재 분담금은 미군 인건비를 제외하고 주둔국서 발생하는 비용을 토대로 계산하는데, 향후 완전히 새로운 협상을 하기를 바라는 미국 정부가 인건비에 연합 훈련 전략자산 전개 비용, 사드 주둔비 등을 다 합쳐 50억 달러라는 안을 마련해 보고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도 "트럼프 대통령이 엉터리 숫자를 생각난 대로 말하는 경향이 있으며, 앞으로 협상에서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일단 금액을 올려 부르는 전략을 썼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연설에서 거론한 협상 시점도 한미 분담금 협정이 진행되던 시기와 들어 맞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나라는) 예산이 이미 정해졌고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5억 달러를 더 주겠다고 했다"면서 "나는 당신들 예산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이제 2주 뒤면 다가올 내년에는 더 많이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한국과 미국은 작년 3월부터 약 1년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벌인 끝에 지난 3월 8일 특별협정문에 공식 서명했다. 따라서 '2주 뒤면 내년이 다가오는' 작년 말이면 양국 간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다.
더구나 이번 협정의 유효 기간은 1년으로 양국은 2020년 이후에 대해 적용할 11차 협정문을 만들기 위한 새 협상을 조만간 시작해야 한다. 즉, '내년에 더 많이 요구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가 한국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뿐 아니라 독일과 일본 등 모든 미군 주둔국에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만큼, 이번 발언이 한국 만을 겨냥했다고 볼 수는 없으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예로 든 '한 국가'는 한국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우리 외교 당국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한국을 염두에 뒀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혼선을 빚게 한 트럼프 대통령의 사우디 언급은 위 발언 직후에 이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에게는 그러한(비용을 지출하는) 나라가 많이 있다"며 "우리는 매우 부자 나라, 가진 게 현금뿐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보조하고(subsidize)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람들은 (미국에서) 4천500억 달러 상당을 지출하는 사우디에 대해 미국의 (군사)보조금을 줄이기를 바란다"며 "나는 (사우디) 왕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NYT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에 대한 팩트체크 기사에서 '사우디가 미국에서 4천500억 달러(521조6천850억원)를 쓰고 있다'는 어떤 공개된 정보도 찾을 수 없다면서, "미국은 사우디의 원유를 사고, 사우디는 미국의 무기를 구매하는 단순한 등식만이 오랫동안 지속해 왔다"고 말했다.
신문은 또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를 인용해 "사우디에 대한 미국의 군사 훈련과 안보 지원은 전적으로 사우디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백악관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왜 그러한 수치를 꺼내 들었는지 상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고 NYT는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위스콘신주 그린베이 연설. 방위비 분담금을 지적 한 내용은 1:19:27 부터.
gogog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