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반도체 도약' 삼성 치고 나가고 정부는 인프라 지원

입력 2019-04-30 15:30   수정 2019-04-30 18:07

'시스템반도체 도약' 삼성 치고 나가고 정부는 인프라 지원
"팹리스-파운드리 연계 생태계 조성에 초점"…'얼라이언스 2.0' 협업 주목
시스템반도체 시장 놓고 글로벌 주도권 다툼…골든타임 놓칠 위기

(세종=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한국이 반도체 불모지에서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 됐듯이 메모리 시장보다 1.5배 크고 경기변동 영향도 적은 시스템반도체에서 강자로 서겠다는 정부의 비전이 제시됐다.
최근 삼성이 메모리반도체 편중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사업에 133조원에 달하는 투자계획을 밝힌 데 이어 정부도 인력양성과 연구개발(R&D) 등 인프라 지원으로 이를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이전에 호황을 누리던 메모리반도체 수출이 작년말부터 계속 부진한 것도 이 같은 국면 전환에 한몫했다.
정부의 시스템 반도체 육성안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8년부터 2016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메모리에 비해 취약한 시스템반도체 저변 확대를 위해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를 중심으로 시스템IC2010·시스템IC2015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이를 통해 DDI(디스플레이 구동칩), 이미지센서 등 일부 품목에서 성과를 거뒀으나 시장 점유율 3.1%에 기술력도 미국의 80%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성장이 정체돼 있다. 글로벌 50대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 가운데 한국 기업은 한 곳 뿐이다.
이런 가운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반도체 수요가 PC·모바일에서 자동차·로봇·에너지·바이오 등 전산업으로 확산하면서 데이터연산과 제어기능을 갖춘 시스템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시스템반도체는 대량생산 위주의 메모리와 달리 다품종 맞춤형 제품 위주이고 업체 요구를 만족시킬 설계기술과 고급인력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또 설계-제조간 분업구조 등 차별화된 특성을 갖고 있어 업계의 투자와 함께 생태계 전반에 요구되는 인프라 지원이 병행돼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게 산업부 설명이다.
특히 정부가 시스템 반도체 지원에 나선 것은 단순히 삼성이 대규모 투자에 나섰기 때문만은 아니라는게 업계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현재 이 시장에서 미국이 압도적 점유율(70%)을 확보하고 있는 가운데 대만과 중국 등이 빠른 속도로 추격, 성장하고 있어 자칫 골든타임을 놓칠 경우 국내수요 시장조차 해외 메이커들이 차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재용 "시스템반도체도 확실한 1등할 것"…비메모리 '승부수' / 연합뉴스 (Yonhapnews)




여기에다 국내 제조업 위기론이 대두된 가운데 미래차, 로봇, 사물인터넷(IoT)가전 등 유망한 신(新)산업도 우수한 시스템반도체 제품이 양산돼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가 수개월간 시스템반도체 업계 간담회 등을 통해 마련한 이번 대책은 과거와 달리 해당 산업의 자생적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산업부는 "과거 따로 놀던 반도체 설계(팹리스)와 생산(파운드리)을 아울러 산업내 분야별 연결고리를 이어주기 위해 균형있는 대책을 마련하고자 노력했다"며 "인력양성도 과거 R&D를 통한 간접적 인력양성에서 학사, 석·박사, 실무 등 체계적 인력양성 사업을 도입한다"고 했다.
메모리 분야보다 훨씬 창의적이고 고차원적인 능력이 필요한 시스템반도체 인재를 10년내 키워내도록 하기 위해 석·박사 과정은 융합형 고급 전문인력 양성을 목표로 삼았다.
또 민간의 시설·R&D 투자를 세제, 금융 등으로 뒷받침한다.
국내 200여 팹리스 업체들의 규모가 영세하다 보니 2, 3년간 10억∼20억원 하는 R&D 비용을 감당하기도 힘들었던게 현실이다. 따라서 이번에 1천억원 규모의 팹리스 전용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것도 이들 팹리스의 기술력 확대에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아울러 이번 대책의 주요한 특징은 시스템반도체 공급기업과 수요기업간 이른바 '얼라이언스 2.0'을 구성해 수요발굴에서 기술기획, R&D까지 공동으로 속도감있게 추진한다는데 있다.
과거 대책은 전자분야 일부 대기업에 수요가 한정된 것을 자동차, 바이오 등 5대 전략분야로 확대했다. 자동차의 경우 현대모비스[012330], 바이오·의료는 원텍, IoT가전은 LG전자[066570], 에너지는 한국전력공사, 첨단로봇·기계는 현대로보틱스 등이 참여해 넥스트칩, 옵토레인 등 각 분야 팹리스와 연계된다.
민간뿐 아니라 공공부문에서도 팹리스 수요 창출을 위해 에너지, 안전, 국방, 교통인프라 등에서 전방위 협력체계를 만든다.
2000년대 초반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국내 팹리스업체들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주로 해외에 생산 주문을 맡기고, 삼성 파운드리 부문도 퀄컴 등 글로벌 팹리스 주문 위주로 받는 등 국내 팹리스-파운드리간 협력이 겉돌았던 점을 교훈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특히 스마트폰을 주력사업으로 두고 있는 삼성전자[005930]가 스마트폰의 '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눈' 역할을 하는 이미지센서(CIS) 등 시스템 반도체 발전에 확실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이전과 다른 분위기다.
국내 팹리스 업체들은 메모리 공정에서 세계 선두이고 파운드리 기술력에서도 검증된 삼성전자 등을 활용하면 규모를 키우는 시간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팹리스는 퀄컴,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이 압도적이고 중국이 강력한 내수 기반으로 추격 중이다. 파운드리에서는 대만 TSMC가 48%의 시장 점유율로 독보적 1위를 차지한 가운데 삼성전자가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중 무역갈등의 이면에 반도체 주도권 싸움이 있다는 점도 무시못할 대목이다.
성윤모 산업장관은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있어 기회의 창을 잘 활용해야 한다"며 "4차혁명과 5G 시대에 우리 기업들이 메모리 분야 등에서 경험을 갖고 있는 만큼 인력과 기술개발로 뒷받침한다면 시스템반도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sungj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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