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고려·조선시대에 수리…고려 이후 토성으로 변경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백제 지방 행정구역인 오방(五方) 중 중방(中方)으로 비정되기도 하는 정읍 고사부리성(古沙夫里城, 사적 제494호)에서 백제시대에 돌로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정교한 성벽이 발견됐다.
정읍시와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전라문화유산연구원(원장 천선행)은 전북 정읍시 고부면 고사부리성 남문터 동쪽 900㎡ 부지를 발굴해 잔존 길이 45m, 높이 3.5m, 최대 폭 5.4m인 백제 석축(石築) 성벽을 찾아냈다고 1일 밝혔다.
해발 133m 정상부 두 봉우리를 감싸는 고사부리성은 백제시대에 처음 조성한 뒤 조선시대에도 1765년까지 읍성으로 사용했다고 전하는데, 이번 조사에서도 백제가 최초로 성을 쌓은 뒤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각각 수리한 양상이 드러났다.
백제시대 성벽은 3∼4개 구간으로 나눠 외벽과 내벽을 쌓은 뒤 중간을 흙이나 돌로 채우는 협축(夾築) 기법으로 축조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연 지형을 계단식으로 파낸 뒤 바닥을 구축하고 그 위에 성을 쌓았다.
조사단은 백제 성벽에서 성돌을 약 3∼5㎝씩 안쪽에 들여 넣어 쌓는 퇴물림기법, 품(品)자 모양으로 돌을 올리는 바른층쌓기, 모양이 제각각인 건축 부재를 서로 맞대어 면을 맞추는 그랭이 기법이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또 성돌 하나가 다른 돌 6개와 맞물리도록 하는 이른바 '육합쌓기' 양상도 확인됐다. 육합쌓기는 고구려 성벽에 주로 쓴 축성기술이라는 점에서 백제 석성 기원과 고구려의 관련성을 알려주는 자료라고 연구원은 강조했다.
연구원 관계자는 "내성벽은 외성벽보다 직사각형 석재 사용 횟수가 많고, 현재 1∼4단 정도 남았다"며 "외성벽과 내성벽 사이는 석재를 넣은 적심(積心) 구조로, 성벽과 동시에 쌓아 올린 듯하다"고 주장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성 안쪽에 많은 토사가 퇴적하면서 수리를 진행했는데, 전반적으로는 백제 석축성벽 전통을 유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성곽 일부를 제거한 뒤 물을 배출하는 수구(水口) 시설 2기도 확인됐다. 수구 규모는 길이 7m, 너비 0.8m 정도다.
성벽 바깥쪽에서는 지름 20∼30㎝인 나무기둥 자국이 3∼4줄 정도 발견됐다. 나무기둥은 성을 쌓을 때 동원한 시설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가 되면서 성벽은 토성으로 변했고, 조선시대에는 흙과 돌을 모두 사용한 성곽이 들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유물로는 다리가 세 개인 삼족토기·항아리·접시·병 등 백제 토기와 기와, 고구려계 토기로 알려진 암문(暗文) 토기를 출토했다. 암문은 흑색 마연토기에 그린 검정 선 무늬를 뜻한다.
연구원 관계자는 "고사부리성은 백제가 견고함과 안정성을 극대화하는 축성기법을 동원해 쌓은 성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며 "이후에도 조선시대까지 장기간 이용했다는 점에서 고사부리성이 지리적 중심지이자 통치의 핵심적 장소로 사용된 것 같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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