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부재'에 서운…"지원·보상 진행 상황 알려주는 사람 없어"
"아직 뭘 해야 할지" 막막…생활과 동떨어진 구호품에 두 번 눈물
[※편집자 주 = 지난달 4일 강원도 고성 속초 강릉 동해 인제에서 발생한 대형산불로 3천㏊ 가까운 산림이 잿더미가 되고 1천 명이 넘는 이재민이 터전을 잃었습니다. 정부가 주택 등 복구지원비 1천853억원을 신속히 투입하기로 한 가운데 국민은 소중한 성금으로 빠른 복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산불 발생 1개월째 정부 피해조사를 토대로 피해 규모와 복구계획, 예방대책, 이재민들의 생활, 지역 경기 등을 짚어보는 기획기사 7편을 송고합니다.]
(고성=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다 된듯하지만, 아무것도 안 됐고 모든 게 어렵기만 합니다. 이재민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체육관이 작아 보일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섰던 텐트는 어느새 절반 넘게 사라졌다. 휑하게 드러난 빈자리가 썰렁한 분위기를 대변했다.
남은 텐트 사이사이는 마치 이가 빠진 듯 듬성듬성 빈 곳이 눈에 띄었다. 한 이재민의 텐트 이름표 아래 삐뚤게 쓰인 '가자 집으로'가 유독 쓸쓸히 다가왔다.
4월의 마지막 날 찾은 고성군 천진초등학교 내 임시대피소에는 텐트 16동에 16세대 30명만이 남아 있었다.
산불 초기 130여 명이 텐트 52동을 가득 채웠던 이곳에서 남은 이재민들은 쓸쓸한 봄날을 보내고 있었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의 일상은 단조로운 편이다. 자원봉사자들 덕에 끼니는 거르지 않고 있으나 이외 시간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대부분이다.
대피소 주변을 걸으며 운동하고, 대피소에서 함께 생활할 수 없는 반려견에게 밥을 주러 가거나 생필품을 사기 위해 가끔은 시내에 다녀오기도 한다.
지금도 군청에서는 연수원, 수련원, 리조트 등 시설로 옮길 것을 권유하지만, 이재민들은 대피소가 더 편하다고 입을 모은다.
잠자리는 불편하지만, 말동무가 있어 외롭지 않고, 슬픔을 이야기하고 공감할 수 있어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가용 승용차가 없는 이들에겐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도 감옥이나 다름없다.
아이들이 뛰어놀아야 할 이곳에서 언제까지고 생활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지만 '주거문제가 일단락됐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자꾸 내보내려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행정당국을 향한 의구심도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아니 왜 1천만원만 들어왔지. 우리 집은 전파됐는데 이거 뭐 잘못된 거 아니에요?"
이재민 최영자(65·인흥2리)씨가 의아한 표정으로 통장을 흔들어 보이며 TV 앞에 모여 있는 다른 이재민들에게 하소연했다.
국민 성금 1차 긴급 지원이 이뤄진 이날 전파(全破) 가구에 3천만원씩 지급되기로 했으나 1천만원만 들어왔기 때문이다.
몇 차례 시도 끝에 연결된 군청 관계자로부터 "두 곳에서 돈을 나누어 지급하는 것으로 안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최씨는 안심했다.
하룻밤 새 보금자리를 잃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카메라, 마이크, 녹음기가 들이닥치고, 경황이 없어서 하고 싶은 말도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던 이재민들은 시간이 지나 안정을 찾으면서 조금씩 속내를 털어놨다.
이재민들은 '소통 부재'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지원이나 보상 문제 관련한 진행 상황을 알고 싶어도 나서서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 답답하다는 것이다.
"불만이 아니라 궁금한 거예요. 이재민 모두가 불안하고 어려운 상황이니 중요한 이슈가 있을 때만이라도 설명을 해주고 신뢰를 얻는 게 중요한데 불신만 증폭되고 있는 거죠."
구호품 배분에서 세심한 배려가 부족한 점도 이재민들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사용기한이 지나거나 얼마 남지 않은 화장품 샘플부터 휴대용 가스레인지는커녕 숟가락 하나 없는 상황에서 받은 포장된 죽, 입을 수 없는 옷가지 등은 이재민들을 두 번 울렸다.
용촌2리에 본보기로 설치돼 있던 임시주거시설(컨테이너 하우스)은 인근 성천리로 옮겨지면서 어떤 살림살이가 들어가는지 구경도 하지 못한 이재민도 허다하다.
밖에서는 이재민들에게 집도 주고 돈도 준다고 하니 다 해결된 것으로 아는 사람도 있지만, 안에서는 '전시행정'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대피소에서 이재민들과 동고동락하다시피 하는 신창섭(61)씨는 "이재민들은 마음도 불편하고, 사실 뭐가 필요해도 얘기를 잘하지 못해요. 구호품이 아무리 많이 들어오면 뭐합니까. 소통이 매끄럽게 이뤄지질 않으니 이런 일들이 상처가 되는 거죠"라며 씁쓸해했다.
연수원이나 수련원 등으로 옮긴 이재민들도 임시로나마 따뜻한 보금자리를 얻었지만 식어가는 관심에 '잊히는 건 아닐까' 막막한 건 마찬가지다.
인흥3리에서 만난 김성혁(67·국회 고성연수원 거주)씨는 "아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정부 차원에서 지원한다고 했고, 대통령이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이재민들이 힘낼 수 있는 뭔가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라며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타버린 집에)안 오고 싶죠. 저만 아니라 다들 안 오고 싶어해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결되는 건 없잖아요"라며 이웃에게 빌려온 사다리를 타고 농사용 자재를 쌓을 창고 수리를 위해 망치를 두드렸다.
"당장 불편하지만, 잘 해낼 거예요"라는 그의 말이 스스로 거는 주문처럼 들렸다.
conany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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