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 오가며 지극정성 동생 돌봤는데…" 조현병이 불러온 비극

입력 2019-05-01 14:26   수정 2019-05-01 15:18

"먼 길 오가며 지극정성 동생 돌봤는데…" 조현병이 불러온 비극
전남에서 부산 오가며 동생 돌봐, 반찬 보내며 지극정성
병 자각 못 하는 조현병 환자, 치료 권하는 가족에 적개심 갖기도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부산에서 조현병을 앓는 50대 남성이 자신을 헌신적으로 돌봐온 친누나를 살해해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병을 자각하지 못하는 조현병 환자들이 자신을 애정으로 돌보며 치료를 권유하는 가족에게 되레 적개심을 가지는 경우도 많아 환자 가족들의 말 못 할 고민도 깊은 상황이다.
1일 경찰에 따르면 친누나를 살해한 서모(58)씨는 20대 후반에 조현병을 처음 진단받아 30년간 앓아왔다
병 때문에 평생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미혼으로 살았다.
서씨는 2017년 아버지 죽음으로 부모가 모두 사망한 뒤 원래 살던 전남 지역을 떠났다.
2남 3녀 중 넷째인 서씨는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집을 떠났다가 그해 부산 한 병원에 강제입원 되면서 가족들에게 부산에 산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어떤 과정으로 강제입원이 됐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피살된 서씨의 누나는 장녀로 형제·자매들 중에서도 서씨와 가장 가까웠고 서씨를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큰누나는 주거지인 전남과 부산을 오가면서 일정한 주기로 동생 집에서 이틀에서 1주일까지 머물렀다고 한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반찬을 만들어 동생에게 수시로 보내기도 했다.
조현병 50대, 자신 돌보던 친누나 무참히 살해…사건 현장 처참 / 연합뉴스 (Yonhapnews)
사건 발생 사흘 전인 지난달 24일에도 큰누나는 동생이 '반찬은 먹지 않고 밥만 먹는다'는 소식에 부산으로 달려왔다.
24일과 25일은 동생을 돌봐준 복지사와 면담 일정이 있기도 했다.
큰누나는 이날 상담에서 "동생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며 동생을 믿어주고 신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진술하지 않으며 횡설수설하는 상태다.
전문가는 조현병 환자에게 가족은 든든한 지원군이지만 되레 환자들로부터 적개심을 사는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



조현병 증상은 환청과 피해망상 등이 있지만, 자신에게 병이 있는지 모르는 것도 주된 증상 중 하나다.
김현정 정신과 전문의는 "자각을 못 하는 것을 두고 전문가는 '병식이 없다'고 표현한다"면서 "병식이 없다 보니 환자가 치료를 권유하는 가족에게 반감을 갖게 되고, 조현병 망상 중 가족을 부인하는 증후군도 있어 가족의 고통도 크다"고 말했다.
서씨 누나도 동생의 입원치료를 위해 큰 노력을 해왔다.
올해 1월 28일과 29일 양일간 동생이 다리를 다치자 '치료를 받자'며 동생을 설득하고 입원을 도와줄 경찰을 불렀지만, 동생의 완강한 저항에 경찰을 돌려보낸 것만 3차례다.
서씨는 결국 바로 다음 날인 2월 1일에 정신과에 자진 입원해, 한 달간 치료를 받았다.



김현정 정신과 전문의는 "국가가 가족에게 지나치게 환자 관리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건 아니지 생각해 봐야 한다"면서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이나 여러 사회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일어난 비극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read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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